그러니 부처처럼 되는 게 지혜로운 겁니다.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에게만 의지하세요. 왜냐하면 내면에 부처가 있으니까요. 여러분이 보고 의지해야 할 존재는 바로 그 부처죠. 여러분 내면의 부처와 동행하면 행복합니다. 타인을 보지 말아요.
자, 다음은 소치기예요. 이건 매우 단순해요. 그러니 내가 달력을 꺼내지 않아도 전부 이해할 수 있겠죠? 그렇죠? (예) 좋아요.
부처는 말했죠.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기억하는군요! 와! 그런 걸 어찌 기억하죠? (성스런) 다섯 명호와 일곱 선물을 외우는데도 오래 걸리잖아요. 『다시 해주시겠어요? 반복해 주실래요?』 하죠.
소치기 다니야는 말했죠. 『내 아내는 착하고 허영심이 없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도 항상 내 마음에 흡족합니다. 그녀에게 나쁜 점이 있단 말도 못 들었죠.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그는 아내와의 관계도 좋았어요. 남자들은 다 그걸 원하죠? 지붕 있는 집이 있고, 좋은 아내, 충실한 아내가 있고 아무도 그녀에 대해 나쁜 말을 안 하죠. 그래서 비가 오든 화창하든 천둥이 치든 상관 안 해요. 그의 조그만 삶에서 편하게 느낀다는 거죠. 와! 그는 아마 죽음이 올 거라 생각치 않을 겁니다. 아마 어떤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도 못 할 겁니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를 겁니다. 그래서 늘 안전하다고 여겼죠.
허나 인생은 그렇지 않죠. 만일 수행을 하지 않으면 때로 크게 놀랄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이 세상의 많은 이들처럼요. 그것에 준비되어 있지 않죠. 아무리 많은 보험을 들어놔도 사고의 천사가 올 땐 여러분을 그 즉시 지켜줄 이가 없죠. 아마도 나중에 약간의 보험금을 받을 순 있겠죠. 여러분이 죽거나 불구가 된 뒤에요. 그럼 소용없죠. 사고가 나는 그 순간에 고통과 두려움, 무력감을 느낄 때 아무도 돕지 않을 거예요. 지금은 아내가 곁에 있다 해도 내일은 없을지도 몰라요. 삶에서는 예기치 않은 일들이 늘 일어나니까요. 여러분과 사랑하는 이들, 사랑하지 않는 이들에게요. 누구에게든 언제나, 늘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그는 안심하고 있죠. 그저 소들이 좀 있고, 삶에서 작은 지붕이 있고 온순한 아내가 있으니 그는 괜찮다고 느끼죠.
비의 신은 궂은 날의 상징일 뿐이에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도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고 그는 여깁니다. 모든 남녀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상황은 아내나 남편이 상대방을 배신하는 거죠. 아내나 남편의 배신이요. 그러니 아내까지 좋으면 뭘 더 바라겠어요? 모든 것이 완벽한 거죠. 그는 아늑하고 안전하고 모든 게 보장됐다 여겨요. 앞으로도 평생 그럴 거라 생각하죠. 하지만 그럴 수도, 안 그럴 수도 있죠.
정말이지, 부처는 더 이상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했어요. 아내나 타인이 차분해진 게 아니라요. 부처는 말했죠. 『내 마음은 차분해졌고 자유로워졌다. 오랜 수양으로 잘 다스려졌다. 내게선 나쁜 걸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이 텅 비어서 이 세상에 그를 얽매거나 끌어당기거나 붙잡거나 구속할 것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의 마음은 이미 자유로워진 거죠. 그저 차분한 것만이 아니죠. 좋은 방법을 통해 『오랜 수양으로 잘 다스려』 졌죠. 왜냐하면 더 높고 고상한 이상과 영적 자양분으로 키워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잘 다스려졌어요. 그래서 내면을 보면 어떤 악한 것도 찾을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무슨 일이나 재난이 생기든 말든 개의치 않죠. 안전하든 안전하지 않든, 부처는 영적 지혜와 청정함 속에서 늘 안전함을 느낍니다.
핵심은 바로, 소를 돌보는 이 소치기는 타인을 본다는 거예요. 자기자신을 보고, 안전과 진리, 지혜와 평화를 구하는 대신에 타인을 봅니다. 그는 여기 넓고 좋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소떼, 튼튼하고 비가 새지 않는 초가 지붕, 선하고 덕 있는 아내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죠. 하지만 부처는 정반대죠. 그는 대신 자신을 봅니다. 그곳이 여러분이 봐야 할 곳이죠. 내일이라도 아내가 그를 떠난다면, 그는 누구를 보고 덕을 찾아야 할까요? 만일 소들이 죽거나 무슨 일이 생기거나 재난이 닥치거나 병이 나 죽는다면 그가 어떻게 모든 게 괜찮다고 느끼겠어요. 초원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고 소들도 없다면요? 가뭄이 오면 어쩌죠? 그땐 초원에 풀도 없고 물도 없겠죠. 만일 그와 그의 재산에 불운이 닥쳐서 지붕을 수리할 돈이 없거나 길거리에 나앉게 되면 어떡할 건가요? 그럼 어디서 안전을 구할 수 있나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어요. 여러분도 잘 알고 있죠. 부유하고 유명한 많은 이들이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모든 걸 잃기도 하고 재난을 당하기도 하죠. 요즘 많이 볼 수 있죠. 재난으로 많은 집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모든 걸 잃기도 해요.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사랑하는 이들도요. 그러니 부처처럼 되는 게 지혜로운 겁니다.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에게만 의지하세요. 왜냐하면 내면에 부처가 있으니까요. 여러분이 보고 의지해야 할 존재는 바로 그 부처죠. 여러분 내면의 부처와 동행하면 행복합니다. 타인을 보지 말아요.
와, 방금 깼어요? 아님 뭐했어요? 내가 그렇게 말을 많이 했는데 이제 박수를 쳐요? 왜 이리 늦게 치죠? 거기 앉아 뭐 했어요? 들었어요? 내가 말한 걸 들었나요? 들리죠? (예) 때로는 마이크나 목소리가 울려서 잘 들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괜찮아요. 수프림 마스터 TV가 있죠. 적어도 늘 그것에 의지할 수 있죠.
물론 우리는 부처의 축복에 의지할 수 있죠. 부처가 도울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그 어떤 것엔가도요. 또는 예수가 도울 수 있고 여러분의 스승이 축복해 줄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에도 의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걸 여러분도 갖고 있어요. 그러니 그걸 찾고, 계발하고, 끌어올리고, 바라보세요!
너무 과하군요. 말도 다 안 끝났어요. 내 에고에는 좋겠죠. 고마워요. 내게 에고가 남아 있다면 겁에 질려 이미 사라졌을 거예요. 지금까진 이해가 됐죠? (예)
『내게선 나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게 여러분이 도달해야 할 곳이죠. 스스로 선언할 수 있을 때처럼요. 모든 사람 앞에서나 친구, 가족 앞에서 선언할 필요 없어요. 내면을 보며 『내게선 나쁜 것을 찾아볼 수 없다』라고 스스로 선언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은 부처입니다. 다른 누가 그걸 인증하거나 증명서를 줄 필요 없죠. 박사 학위처럼요.
벌써 5일째죠? (7일째입니다) 오늘이 7일째예요? 아니죠.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 날인가요? 오 그래요, 그렇겠네요. 30일이군요.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깜박했어요. 그러니 차이를 알겠죠. 내 눈이 다 말랐어요. 비의 신이 비를 안 내렸죠. 거의요. (밖에) 비가 오네요. 우린 개의치 않아요. 지붕을 수리했거든요. 내 아내는 아주 훌륭하고 덕이 높아요. 난 아내가 없으니 아내 문제가 전혀 없죠.
여러분은 여기 아래 앉아 『난 두려움이 없다. 비의 신이 비를 뿌려도 괜찮다』 말할 수 있죠. 하지만 만일 부처처럼 사막이나 밀림 한가운데 앉거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막의 나무 밑에 앉아 있다면 여러분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요. 아마 『비의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라고 하진 않을 거예요. 혹은 사막에 폭풍이 몰아친다면, 모래 폭풍이 친다면 『오, 폭풍의 신이여, 폭풍을 치소서』 할 수 없죠. 그 밑에 파묻힐 거예요. 그 전에 이미 여러분의 눈과 모든 게 끔찍하겠죠. 주 마하비라와는 다르겠죠. 그는 견뎌낼 수 있었어요. 아마 상징적인 것이었겠죠. 아마 외적인 게 아니라 내적인 것이었겠죠. 왜냐면 때로 스승이 고통받는 걸 여러분은 모르니까요 그러니 무형의 모래폭풍이나 아스트랄계의 다른 종류의 공격이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주 마하비라가 봤거나 주위의 다른 이들이 봤을 겁니다. 물리적인 게 아니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좋다는 건 아니에요.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게 훨씬 더 나빠요. 마치 일부 사람들, 마법사들이 무형의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요. 그럼 그의 주변이나 그의 몸에서 칼이 보이진 않지만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일부 흑마술사들이죠.
소치기는 계속했어요. 『난 놀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아이들은 다 화목하고 건강합니다. 그들에게 나쁜 점이 있단 말은 못 들었어요.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뿌리소서』 와! 완벽한 삶이죠. 솔직히 이 세상에서 그의 삶은 100% 완벽해요. 그의 아내는 선하고 아무 문제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를 비난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수 없어요. 아들들도 사람들과, 그리고 서로 화목하게 지냅니다. 그래서 그에겐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죠. 또 심지어 아들들은 가족 외의 사람들과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 다 완벽하죠. 완벽해 보입니다. 하지만 더 완벽한 것, 더 완벽한 삶을 들어보죠.
부처는 말했죠. 『나는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사장이 없는거죠. 『온 세상을 거니노라』 승려들처럼요. 『(내 각성)의 보상으로 돈벌이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뿌리소서』 다 아는군요. 그런데 뭐 하러 내가 계속 말을 하는 거죠? 보세요. 한 사람은 그가 얻고 지킬 수 있는 온갖 물질적인 것에 의존해요. 거기서 안전함과 긍지를 느끼고 안심하죠. 다른 사람은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아요. 돈조차 벌지 않았죠. 그는 사장도 없고 완전히 자유로워서 원하는 곳은 어디든 돌아다닙니다. 그는 보상을 받았어요. 자신의 각성(깨달음)으로 삶을 유지하니 『돈벌이를 할 필요가』 없어요.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세금 같은 걸 낼 필요도 없죠.
정말 멋진 삶입니다. 내가 스승이 되기 전에 난 전 직장에서 소액의 돈을 받았어요. 여러 해는 아니었지만 독일, 유럽에서는 퇴직연금을 미리 받을 수 있어요. 난 그걸 받아서 몇몇 스승들과 내가 머문 아쉬람에 보시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