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2세기의 로마 황제로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이은 로마 5현제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19년간 통치하는 동안 아우렐리우스는 철인왕이란 명성을 얻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을 믿었던 이 로마 황제는 수양에 대한 자신의 방법을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쾌락을 추구하거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삶이 주는 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타인을 공정하고 존중하며 대하도록 가르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을 위한 지침의 근원으로 스토아 철학과 영성에 대한 개인적 메모와 관념을 기록했습니다. 이 메모들은 원래 고대 그리스어로 쓰였고 『명상록』이란 전집이 되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철학자가 이 작품집에 탄복했으며, 의무와 봉사의 통치의 진정한 증거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6권을 소개하겠습니다.
명상록 6권
나는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신에게 만물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육신은 구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혼엔 자신의 활동 외엔 선도 악도 아니며, 그 속의 것은 지배받는다. 하지만 영혼은 그 중에도 현재와만 관련 있다. 자신의 미래와 과거 활동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발이 할 일을 발이 하고 손이 할 일을 손이 하는 한, 손이나 발엔 어떤 노고도 자연에 어긋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의 의무를 다하는 한, 어떤 노고도 자연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 노고가 자연적이라면 인간에게 어찌 악일까?
평범한 기술자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문외한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자신들의 기술의 원리에 집착하고 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걸 아느냐? 인간이 신과 공유하는 이성이라는 자신의 원리를 존중하는 것보다 건축가나 의사가 자신의 원리를 더 존중한다면 이는 수치스럽지 않은가?
아시아와 유럽은 우주의 구석들이다. 바다는 하나의 물방울, 아토스산은 작은 흙덩이, 모든 현재 시각은 영원 속의 작은 점이다. 만물은 아주 작고, 쉽게 변하고 금세 사라진다. 만물은 저 공통된 지배적 원리에서 직접 유래하거나 부수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사자의 쩍 벌린 입이나, 독이나 가시나 늪지처럼 유해한 것들은 저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부수적 현상이다. 그러니 그런 현상들이 네가 공경하는 것과 무관하다고 여기지 말고 만물의 근원을 생각하라.
현존하는 것들을 본다면 태곳적부터 일어난 것과 영원토록 존재할 모든 것을 본 것이다. 만물은 종류도 같고 형상도 같기 때문이다. 우주 안의 만물은 서로 연계되고 의존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라. 만물은 서로 얽혀 있고, 그래서 서로 호감을 갖기 때문이다. 수축과 팽창 운동, 공감, 존재의 통일성으로 인하여 만물은 서로가 서로의 결과인 까닭이다. 네 몫으로 주어진 사물들에 적응하고, 운명이 네게 정해준 사람들을 사랑하되 진심으로 사랑하라.
도구나 연장이나 용기는 그것을 만든 용도를 수행해내면 잘된 것이며, 이때 제작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에 힘입어 유기적 통일을 이루고 있는 사물들은 그것을 제작한 힘이 그 안에 내재하여 함께한다. 그렇기에 너는 그 힘을 존중해야 하고, 그 힘의 의지에 따라 처신하며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만사가 너의 뜻대로 된다고 여긴다. 우주에도 만물이 그러하다.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너에게 선하거나 악하다고 여긴다면, 그런 악한 것이 닥치거나 선한 것을 상실할 경우 너는 신들을 원망하고, 그런 일을 만든 것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자들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많은 불의를 자행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만 선이나 악으로 판단한다면 신을 탓하거나 인간을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며, 더러는 알고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더러는 모르고 그렇게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런 의미에서 「잠자는 자들도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일꾼이고 협력자이다」라고 말한 것 같다. 각자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협력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헐뜯거나 방해하거나 제거하려는 자도 적잖이 도움을 준다. 우주는 그런 자도 필요하다. 따라서 누구와 함께할지 결정하는 것은 네 몫이다.
우주를 관장하는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잘 이용할 것이며, 자신의 조력자 사이에서 네 자리를 정해줄 것이다. 그러니 너는 크리쉽포스가 언급하는 드라마에서 저속하고 가소로운 문장과 같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태양이 비를 내리는가? 아스클레피오스가 결실의 여신의 일을 하겠는가? 각각의 별들은 어떤가? 서로 다르지만 공동 목적을 위해 협력하지 않는가?
따라서 신들이 나에 대하여, 나에게 일어날 일에 대하여 어떤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은 최선의 결정이다. 지혜 없는 신이란 쉽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슨 이유로 신들이 나에게 해를 입히려 하겠는가? 그렇게 한다고 신들과 신들이 각별히 보살피는 우주에 무슨 덕이 있는가? 그러나 신들이 나에 대하여 따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신들은 아무튼 우주에 대하여 결정을 내린 것이고, 그러한 결정의 부수적 현상으로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러나 신들이 어떤 것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를 믿는 것은 불경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더는 제물도 바치지 말고, 기도의 맹세도 하지 말고, 그 밖에 신들이 와 있고 우리와 함께 산다고 믿고서 행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말자. 신들이 정말 우리와 관계된 어떤 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나는 자신에 관해 결정할 수 있고, 나에게 유익할 것을 숙고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소질과 본성에 맞는 것은 유익한 법이다. 그런데 내 본성은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이다.
나의 도시와 나의 조국은 안토니누스의 로마이다. 인간으로서의 나에게는 우주이다. 따라서 공동체에 유익한 것들만 나에게 선인 것이다. 우리 각자에게 일어나는 일은 세상에도 유익하다.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한 개인에게 유익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한 것을 보편적 진리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유익하다는 말은 보편적 의미이다. 원형 극장이나 그와 같은 장소에서 공연들은 매번 똑같이 되풀이하니 구경이 싫어지듯이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똑같고, 똑같은 것들에서 비롯된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