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단체라면 주 예수의 가르침과 같은 걸 가르쳐야 하잖아요. 아니면 선지자 무함마드나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부처님이나 구루 나낙, 혹은 그 어떤 예언자의 가르침이든요. 하지만 그들은 스승들이 설법하는 걸 그냥 싫어했어요.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같은 가르침을 설하고 같은 신, 하나의 신을 믿는다고 공언하며 고대의 동일한 가르침을 되풀이하는 종교인이 새로운 선지자, 새로운 스승이 와서 똑같이 그렇게 하면 왜 항상 그 선지자를 박해하는지 모르겠어요.
방금 도착했나요? (어제 왔습니다) 어제요? 어디 있었나요? (여기요. 작으니까요. 다른 분들 덕분에요) 비건 김치가 당신을 집어삼켰나요? (네) 알겠어요. 근데 오늘 누가 내 음식을 요리했나요? 손들어보세요. 저녁에요. 통역하고 있나요? 당신이 요리했어요? 일어나 보세요. 안 보여요. 여기 한 사람이 숨어 있군요. 다른 사람은 잘 안 보여요. 갈색 옷 입은 사람이요. 모두 비구니군요. 저녁이요. 그래요? (네) 감사합니다. 나이 든 여인들을 본 것 같았는데 아닌가요? 칼질할 때요. 근데 아니었군요. 아주 젊군요. 고마워요. 맛있었어요. 한데 모기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왜 스승님까지 김치를 드셨나요? 여기 모든 사람이 김치를 이미 먹었던데요!』 맛이 똑같으니까요. 모기들이 오늘 저녁엔 내 헌혈을 거부했죠. 『우린 김치와 인삼을 이미 질리도록 먹었어요』 한국인들로부터요. 네. 아주 좋아요. 이러면 나를 물지 않겠죠.
네, 아주 좋아요. 여러분이 안됐군요. 이미 말했듯이 그 노인은 안 왔어요. 석유 재벌인 나이 든 남편 말이에요. 아직 안 왔죠. 석유재벌이 아니어도 재벌이기만 하면 되죠. 어떤 부부가 말다툼을 했어요. 말다툼요, 싸우고 있었죠. 통역하고 있나요? 좋아요. 아니면 그냥 웃으세요. 그들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죠. 아내가 남편에게 말하길… 오, 이젠 좀 시원하네요. 훨씬 시원해졌어요. 이 창문도 약간 열 수 있나요? (열려 있습니다) 열려 있어요? 좋아요. 아내가 남편에게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죠.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아버지가 막대한 재산을 내게 물려주셨기 때문이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죠. 『당신이 틀렸어. 그건 아냐. 누가 재산을 물려줬든 결혼했을 거라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들은 우리가 그저 돈, 돈만 원하는 줄 알 거예요. 아님 뭘 원하죠? 우린 다른 모든 게 이미 있잖아요. 그렇죠? 나스루딘처럼요. 그 이야기 기억해요? 오, 실례해요. 왕이 그에게 『덕과 돈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돈을 선택하겠다 했죠. 기억나요? (네) 그러자 왕은 말했죠. 『나는 덕을 선택하겠다』 물론 그는 자기에게 없는 걸 선택한 거죠.
실례해요. 별거 아니에요. 비건 사탕(목캔디)예요. 그리고 비건 김치요. 비건 김치 좋아하죠? (좋아합니다, 스승님) 맛있지요? 거기 인삼이 들었어요. 그래서 앉아있을 때 들썩들썩하는 기분이 들죠. 조용히 앉아있고 싶어도 내면으로는 흥분이 됩니다. 강하죠? (네) 실은 어울락(베트남)이나 대만(포모사)에선 60대가 되기 전엔 인삼을 주지 말라고 하죠. 난 거의 그 나이가 됐죠! (그렇게 보이지 않으세요, 스승님) 네. 상관없어요. 나이가 중요한 거니까요. 난 거의 그 나이가 됐으니 매일 인삼을 먹어도 되죠! 인삼을 먹고 마실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어요. 그럼 한국인처럼 강인해지겠죠.
어떻게 비자를 그렇게 빨리 받았나요? 남아공에선 몇이나 왔죠? (전 이태리 여권이 있어요) 어떻게 받았나요? 어떻게요? (반은 이태리 사람이거든요) 오, 그래요? (네) 매번 당신이 여권을 받는 일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요. (아녜요, 아버지는 이태리, 어머닌 남아공 출신이세요) 뭐가 다른가요? 아버지가 이태리 사람이고 어머니가 남아공 사람인 것과 어머니가 이태리 사람이고 아버지가 남아공 사람인 것과요. (차이가 없습니다, 어쨌든 이태리 여권은 나옵니다) 그래요? (네) 당신이 비자를 받는 데 오래 걸린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희 중 일부는 그렇죠) (4일 걸립니다) 4일이면 별로 오래 걸리지 않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휴일 빼고 4일이요) 집에 온 걸 환영해요. (감사해요) 또 다른 집이요! 다시 집에 온 걸 환영해요.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작지만 괜찮아요. 강력한 에어컨만 설치하면 돼요. 그럼 더욱 좋겠죠. 아니면 요트가 생기길 기다렸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명상하는 것도 좋을 거예요. 그렇죠? 사방이 바다인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죠. 섬 같은 느낌이 들 거예요. 여러 번 말했지만 우린 운이 좋아요. 같이 앉아서 명상할 곳이 있으니까요. 여기는 왠지 아주 안정적인 것 같아요. 처음에 고생하면 나중에는 순탄해진다고 하죠. 남아공에서도 그렇게 말하나요? 하지만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는 말도 있죠. 말이 여러 가지죠.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여긴 괜찮은 것 같아요. 여러분이 조용히만 하면요. 좀 더 조용히 하세요. 앞에 나가서 너무 크게 떠들지 마세요. 우린 자신이 누군지 과시하지 않잖아요. 특히나 자신의 왕관이 무형의 것일 때는요.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증명하겠어요?
이제 이야기 하나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려주겠어요. 시작할게요. 예전에 이 지상에 내려오는 스승은 항상 새로 시작해야 했어요. 예전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 얘기를 합시다. 역사를 통해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가령 부처님도 반대편이나 기존의 종파 때문에 문제가 있었고 주 예수도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혔죠. 다른 종교 지도자도 그랬죠. 선지자 무함마드처럼요.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이라고 해야죠. 이슬람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에게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정말 멋집니다.
(살람 알라이쿰) 살람 알라이쿰이요? (네)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길』이란 뜻인가요? (알라이쿰 살람) 네? (『살람 알라이쿰』 하면 『알라이쿰 살람』이라고 합니다) 네, 살람 알라이쿰과 알라이쿰 살람이요. 화답하는 거군요.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길』 하면 『당신도요』 하는 거죠. 때로 『선지자께 평화가 깃들길』 하는 걸 잊는데 나를 탓하진 마세요. 무슬림 방식을 잊어버렸거든요. 거기 있었던 게 너무 오래돼서요. 어쨌든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깃들길 바랍니다. 온 세상이 그렇게 되길 바랍시다. 사람들은 때로 『신이 축복하시길』 하거나 『신이 보호하시길』 하는데 아주 멋진 인사입니다. 매우 긍정적이죠. 그런 게 정말 좋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시크교 스승들도 처형당했고 선지자 무함마드도,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그랬습니다. 그는 생전에 그리 평화롭지 않았을 거예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괴롭혀서 선지자와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그의 추종자들에겐 고통스런 시절이었죠. 부처님조차 괴롭힘을 당했어요. 기성 종교 권력으로부터요. 어디서나 그랬어요.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기성 종파 때문이었죠.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종교 단체라면 주 예수의 가르침과 같은 걸 가르쳐야 하잖아요. 아니면 선지자 무함마드나 (그분께 평화가 깃들길), 부처님이나 구루 나낙, 혹은 그 어떤 예언자의 가르침이든요. 하지만 그들은 스승들이 설법하는 걸 그냥 싫어했어요.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같은 가르침을 설하고 같은 신, 하나의 신을 믿는다고 공언하며 고대의 동일한 가르침을 되풀이하는 종교인이 새로운 선지자, 새로운 스승이 와서 똑같이 그렇게 하면 왜 항상 그 선지자를 박해하는지 모르겠어요. 이해가 안 됩니다.
아마 자신이 설하는 내용이 뭔지 진정으로 깨닫지 못해서 그렇겠죠. 『네 안에 신이 있다』고 계속 말하면서도 그들은 바깥에서 신을 찾습니다! 마치 차고나 어두운 골목에서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이 길거리 가로등 밑에서 열쇠를 찾는 것처럼요. 거기가 환하다는 이유로요. 어쨌든 이 세상은 이런 식이에요. 그들은 같은 내용을 전한다고 주장하지만 항상 선지자를 반대해왔어요. 선지자들은 진리를 설할 뿐 아니라 그걸 증명할 수 있는데도요. 그러니 아마도 그들은 자기가 하는 얘기들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그냥 말만 할 뿐이죠. 비건 사과파이 조리법만 계속 되풀이할 뿐 한 번도 만든 적이 없고 어떤 지도 모르며 맛본 적도 없는 것처럼요. 조리법만 외운 것이라서 누군가가 사과파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맛을 보이며 이게 사과파이라고 하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럴 수 없다. 난 여태 사과파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오직 말만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이게 사과파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거죠. 이게 문제예요.
게다가 시기심까지 있죠. 인간의 경쟁심리로 이렇게 생각하죠. 『뭐? 그를 봐! 저런 모습을 좀 봐! 종교 예복도 입지 않았잖아. 관은 이렇게 높이 쓰고 술이 여기까지 내려오고 걸음걸이는 이래야 하는데 저렇게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 어째서 추종자가 그리 많은 거지?』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 머리가 잘못됐다는 말이에요. 또 이러죠. 『그녀를 좀 봐. 우리가 아는 성인의 모습과는 다르잖아. 그런데 어째서 다들 그녀를 따르는 거지?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 최소한 그들에겐 좋지 않죠. 그들 사업에 좋지 않은 거죠. 그래서 예로부터 선지자(스승)들은 늘 큰 고통을 받았어요. 스승만이 아니라 제자들도 고통받았죠. 여러분도 알죠? (네) 때로 사람들은 그들을 끔찍하게 박해했는데 이 이야기는 그중 하나죠.
그래서 난 오늘날의 모든 정부에게 그저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우린 자유가 있으니까요. 우리가 더 많이 명상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비건이 될수록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되고 수행자들에게 더 편안한 세상이 되는 거죠. 대중들이 우리가 하는 걸 이해하게 되고요. 지금은 일부는 이해하지만 일부는 이해 못 하죠. 그러니 우린 참아야 해요. 모두가 이해할 때까지, 혹은 적어도 우릴 내버려 둘 때까지요. 그러곤 우린 그저 할 일을 하다가 때가 됐을 때 세상을 떠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