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팜 린포체의 글 『미망의 조화』를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깨어 있는 것과 꿈꾸는 것 사이의 논쟁을 상세히 다루며 우리가 허깨비 세계에 살기에 두 상태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미망의 조화 깨어 있는 것과 꿈꾸는 것의 논쟁 노래
『옴 스와스티. 고귀하신 문수보살께 머리 숙여 경배합니다! 이제 다음 토론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밤 꿈의 좋은 모습과 오늘 깨어 있는 상태의 체험에 관해 말하자면 둘 다 집착을 만들 수 있음이 비슷하고 둘 다 결국 끝난다는 점도 비슷하다. 꿈꿀 때는 꿈속에 나타나는 것이 실재한다고 믿고 깨어 있는 상태는 깨어 있는 동안 나타나는 것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깨어 있는 자와 꿈꾸는 자 중 누가 옳은지 논하자면
지나치게 과장하는 낮의 상태인 깨어 있음이 「지난밤의 꿈, 너는 미망의 모습이다」라고 선언한다. 이에 마법처럼 나타나는 꿈의 상태인 꿈이 「나뿐만 아니라 너 또한 미망의 모습일 뿐이다」라고 대답한다. 깨어 있음이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은 미망이 아니라 실재하며 인식 대상이 실재하는 것 자체가 증거이다」 이에 꿈이 대답한다. 「밤에도 그들이 나타나니 결정적 증거는 아니다」 깨어 있음이 말한다. 「하지만 바로 지금 그들의 부재가 결정적 증거이다」 이에 꿈이 대답한다. 「오늘 나타난 것들도 내일이면 여기에 없으니 결정적 증거가 아니다」 […]
이후 심오한 지혜는 논쟁 중인 양측에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이 이렇게 계속 논쟁한다면 더 자세한 것을 제시할 수는 있으나 증거는 이미 충분하다. 그대들이 말한 내용을 따져볼 것이다. 둘 다 참이면서 거짓이기도 하다. 살펴보지 않는다면 둘 다 모두 실재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조사해 보면 한쪽의 숨겨진 결점이 다른 쪽의 결점을 드러나게 한다. 사실 그대들은 똑같다. 둘 다 참된 실재가 없다. 꿈꾸는 자는 자기 망상이 망상이라는 걸 인정한다. 꿈은 참으로 정직하다. 반면에 깨어 있음도 망상에 빠져 있지만 그걸 부인하고 있다. 여전히 자기 입장에 집착하므로 이 논쟁에서 이기지 못했다. 비록 꿈이 더 어리석을지라도 오히려 더 통찰력이 있다. 깨어 있음이 더 똑똑했는데 더 무지해졌다. 불변성이나 가변성의 차이는 익숙함 때문이다. 또한 그대 둘의 결과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이제 깨어 있음은 꿈의 본보기를 따라 그대의 견해와 행동을 합쳐 그와 같아지도록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