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 사완 싱 지는 인도의 성인이자 깨달은 스승입니다. 1858년에 태어나서 유망하고 고결한 청년시절을 보냈고 공학을 전공하여 정부에서 부서 관료로 성공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르다르 사완 싱 지는 다양한 종교의 경전을 읽고 순례자를 만나며 끊임없이 신을 갈망했습니다.
신성한 수피교 고행자 바바 카한은 한 스승이 그를 찾아 입문시킬 것을 예언했습니다. 실제로 바바 지 마하라지로 알려진 바바 자이말 싱 지가 자신의 새로운 제자를 찾으러 왔습니다. 사르다르 사완 싱 지는 결국 바바 지의 후계자로 1903년부터 1948년까지 라다 소아미 사트상 베아스의 2대 사트구루가 되었지요.
격동의 사회에 많은 사랑의 활동으로 인류애와 평등을 장려하는 동안 바바 사완 싱 지는 수라트 사바드 요가를 전하며 많은 사람을 영적으로 일깨워주었습니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위대한 스승으로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위대한 스승이 명상에 대해 그리고 영혼이 무상한 세상을 넘어서고 더 높은 영적 세계로 올라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편지를 읽어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편지 114
영적 여정은 미끄러운 길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발을 잘못 딛고 한번 약한 맘을 먹으면 집중이 흐트러집니다. 수년 간의 노력이 순식간에 허사가 됩니다. 마음의 본성은 본래 부정적입니다.
이 부정성은 우리가 진보하면 줄어들지만 아주 미묘하게 작용하기에 위대한 현자 수피, 선지자들은 기꺼이 즐거운 맘으로 그 안에 자신을 내려놓고 그것에 맞춰 연극했습니다. 물질계와 아스트랄계와 인과의 세계의 모든 피조물은 손발이 부정성에 묶여 있습니다.
때로 믿음을 잃고 스승의 결점을 찾을 뿐 아니라 쉽게 스승을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악업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깨어나게 됩니다. 귀의자에게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납니다.
이 여정의 모든 여행자는 이런 동요를 경험하며 한편으로 이는 그들이 돌아와서 참회하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수단으로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외면이나 내면의 스승은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핵심은 내면과 외면의 스승이 그 등급의 규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외면과 내면의 스승 모두 제자들의 관심을 가장 중요시 합니다. 그들에게 이기적인 동기는 없습니다. 그들은 둘이 아닌 하나죠. 그들은 조화롭게 일하고 서로가 하는 일을 압니다. 육신을 가진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내면의 빛나는 스승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외면의 스승은 귀의자가 내면의 스승을 만나는 수단이 됩니다. 따라서 외면의 스승이 더 중요합니다. 만약 제자가 진보했다고 스승에게 말하며 이런 저런 경지에 갔다고 정말이지 잘못 생각한다면 스승은 그의 잘못을 지적해서 낙담시키지 않고 계속 나아가라고 격려하며 이것을 지키고 저것을 피하라는 필요한 가르침을 주며 제자는 더 진보할 때 자신의 잘못을 보게 됩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의욕을 꺾을 수 있습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지요. 마음에 의혹이 있다면 내면의 스승께 맡기고 내면에서 어떤 대답을 얻든지 그것을 받아들이세요. 내면의 스승을 잡고 그와 함께 가고 그와 함께 남으며 모든 의심을 버리세요.
편지 115
아이는 놀기 좋아하고 학교에 가기 싫어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아이는 공부의 중요성을 모릅니다. 그에게 노는 건 재미있고 가끔씩 부딪히고 놀라도 신경 쓰지 않지요.
부모는 당근과 채찍을 사용합니다. 부모님이 선생님과 협력하기에 선생님의 일이 쉬워집니다. 머지않아 아이는 공부의 중요성을 알며 스스로 단련하여 놀이와 공부를 병행하며 둘을 모두 즐기다가 때가 되면 학자나 운동선수가 됩니다.
어떤 면에서 영적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스승은 그가 열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나암(신의 이름)과 접하길 바라지만 제자는 몸의 9개 문에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그는 놀이를 즐깁니다. 놀이에서 실수와 불운을 삶의 게임의 일부로 여깁니다.
그는 나암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스승은 나암의 위대함을 설명함으로 그가 나암에 들어가게 설득하죠. 스승은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하므로 스승의 일이 힘들지요. 부모(칼과 마야)는 영혼이 영적 대학 (열 번째 문 또는 지혜안)에 들어가지 않고 나암과 접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모(칼과 마야)는 쉬운 유혹으로 꾀며 걱정과 병, 역경을 주어 그의 지성에 혼란을 줍니다. 이런 일은 영혼이 나암과 멀어지게 합니다. 영혼은 천천히 새로운 지위를 이해하고 부모의 실체를 점차 깨닫게 됩니다.
그는 점차 마야와 관계를 끊고 진정으로 그에게 이로운 존재는 스승임을 받아들이고는 천천히 아홉 개 문을 떠나 열 번째 문으로 나아가서 나암을 접하며 나암에 집중합니다.
거친 성질이 길들여지고 영혼이 영적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하면 내면으로 들어가기 쉬워지고 열 번째 문 안에서의 새로운 놀이를 즐기기 시작하며 이에 비해 세상의 즐거움은 미끼이자 쓰레기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래서 당신 말처럼 초기 단계에서 진보가 느린 것은 사실입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버리고 감각을 제어하고 여전히 살아서 이리저리 날뛰는 마음을 통제하며 주의를 한곳에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과 믿음으로 사람이 성취하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요? 의지를 굳세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분명 성공할 것입니다. 일단 나암의 씨앗을 심으면 반드시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음을 기억하세요.
브라만드(세상)은 파괴되더라도 나암의 씨앗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나암보다 더 뛰어나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삽드 둔(나암의 달콤함)은 두 세상에서 비교할 것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나암은 내면에 있고 당신이 이를 수 있는 열 번째 문 안에 있지요.
성인들은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있는지 묻지요. 당신은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당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용기를 갖고 애써 올라간다면 모든 것을 얻을 겁니다.
마음은 달콤한 걸 따르고 욕망을 이루며 만족을 바라지만 욕망은 오랜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얻은 것을 버리고 새 쾌락을 따라가기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부족합니다. 마음을 아스트랄 세계로 데려가면 치료법이 있습니다.
지금 그곳의 감로수는 마야와 욕정, 분노 같은 것들이 훔쳐갔습니다. 마음을 거기로 데려가 감로수를 마신다면 영원히 만족할 겁니다. 감로수는 가장 달콤한 것이니까요. 그럼 모든 욕망이 사라져 마음이 쉬게 됩니다.
그럼 마음은 현재의 나쁜 선생이 아닌 충실한 부하로 당신과 함께 합니다. 아스트랄 세계에 이르기 전이라도 주의를 완전히 집중해 눈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해와 달을 건너면 스승을 만날 것이고 스승이 언제나 함께 합니다.
당신을 원할 때 그와 얘기할 수 있고 원할 때 그를 볼 수 있습니다. 당신 방을 막더라도 스승은 함께 합니다. 그 스승이 함께 한다면 외면의 스승과 가까이 있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당신은 의사로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겠지만 회복은 신의 뜻에 맡기십시오. 신은 공정하시고 환자에게 일어날 일은 환자의 업에 따라 일어납니다. 환자에 대한 걱정으로 부담을 갖지 마세요. 마음을 자유롭게 하세요.
당신의 치료와 돌봄은 도움이 되나 걱정은 아닙니다. 걱정은 그들에게 유용한 힘을 약화시킵니다. 당신이 만난 부정적인 힘을 염려하는 어떤 편지든지 나는 이해합니다. 어떤 일이든 당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야 마음이 포기하고 세상의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며 사트 구루(진정한 스승) 와 나암(신의 이름)과 긴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사트 구루가 없이는 나암을 접할 수 없고 나암 없이는 우리의 본향에 이를 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