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번 생에 신비주의를 아는 법을 탐구하기 위해 랄프 M 루이스의 저서 『자아의 성소』1장 『신비적 삶』의 통찰을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잠시 멈춰서 전통의 진정한 가치가 뭔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그것이 언제 인간에게 이롭거나 방해가 될까요? 전통은 사다리의 가로대와 같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진보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예방하지만 사람을 뒤에서 잡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이 여러분을 굳게 잡아서 위로 올라갈 수 없을 때 그것은 방해가 됩니다. 우리는 전통을 격려의 표시로 보고 그 속에서 인간이 만든 발전에 대한 만족을 찾아야 합니다. 전통이 제공하는 최상의 것을 취해서 그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그 시대 전통을 잡고 자신이 생각하는 한에서 왜 그것을 따라야 하는지 스스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전통을 개선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이 더는 무가치하다고 입증되지 않는 한 버려선 안 됩니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도 발견되는 능력인 이성을 인간은 지녔으니 그 이성을 활용해야 합니다. 우린 아이처럼 믿음만으로 조건과 상황을 받아들여선 안 되며 그것을 평가해야 합니다. 신비적 삶에 대해 숙고할 때, 인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보다 더 친밀하거나, 더 밀접하게 관련되거나, 아주 강하게 느끼거나, 스스로 신중하게 분석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주변의 만물에 대한 분석이나 검토에서 시작해야 할까요? 머리 위의 행성들, 다른 천체들, 우주적 법칙이나 일반적 현실과 함께 말입니다. 외부의 모든 것은 결국 자신과의 관계나 자신에게 가치로 판단됩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는 것들은 외부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태도는 그에 대한 여러분의 해석과 인식의 질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것을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자신에서 시작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인간에서 시작하면 인간만이 신성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불행히도 어떤 의미에서 거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인간의 신성에 대한 인상을 아주 강하게 심었기에, 오늘날 많은 사람의 마음에서 인간의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우리 존재에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천박한 것처럼 선언됩니다.
그러나 그런 개념은 만물을 잉태한 무한한 지성에게 부당합니다. 첫째로 인간 영혼이라고 정의된 것과 별개로 존재하는 많은 것을 인간이 창조하지 않았고 인간 정신이 노력한 산물도 아님을 생각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반드시 만물을 낳은 동일한 원천, 동일한 무한한 원천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만물은 신성한 원천에서 추론한 결과입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존재와 인류와 동물의 행위를 신성하지 않다고 하는 건 불행한 일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유의 기능을 가졌으며 그것은 발달과정에서 그 특정한 유형의 존재에게 있지만 그 기능은 자연스럽고 저속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지성에 따라 살면서 자기답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잊어버리고 비난하거나 혹평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더 높은 지능과 더 진보한 상태 덕분에 얻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그들은 가지지 않았다고 덜 신성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오늘날의 우리가 천 년 후 문명의 성취보다 더 부족하기에 자신의 행동을 천하고 저속하며 사악하다고 여기고 싶나요? 우리는 자신이 내적 지성과 본성을 구성하는 최상의 것에 따라 행동했다고 호소하지 않을까요?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아는 능력이 있으면서 잘못 행동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존재도 사악하진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각 계층과 각 인종의 사람은 그 발전 상태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며 오직 그 판단에 의해 죄를 결정해야 합니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중 하나로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 신비주의 철학자들은 인간만이 의지를 갖췄기에 바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옳고 선하다고 이해한 것을 따를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인간이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반대되는 쪽으로 의지가 향할 때만이 죄가 입증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비적 삶에 접근할 때 인간에서 시작해 만물을 신성하게 바라봅니다. 만물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며 그 의지가 최상이고 바람직한 것의 반대쪽으로 향한다는 걸 지적할 위치에 있지 않은 한 어떤 존재도 신성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