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는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 철학자로 1~2세기에 살았습니다. 그는 현재의 터키인 프리지아에서 출생했으며 청년기에는 로마 궁정의 중요한 행정관의 노예로 지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어린 나이에 철학에 대한 지대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의 허락하에 현재 에픽테토스와 함께 로마 제국의 위대한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여겨지는 가이우스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 수학했습니다. 68년에 해방된 젊은 에픽테토스는 로마에서 철학 교사가 되었으며 후에는 그리스 서북부에서 철학 학교를 창립해 계속 철학교사로 일했습니다.
소유물이 별로 없고 단순한 삶을 영위한 에픽테토스는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 실용적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정직과 개인적 자유 및 이성과 덕을 통한 절제를 강조하며 본성에 따라 살기 위해 절제가 필요하다고 했지요. 그의 가르침에서 설명한 절제에 관한 단계와 기술들은 삶의 한 방법으로 스토아학파를 표현합니다.
그의 가장 헌신적 제자 중 하나는 아리아노스가 에픽테토스의 강의 중 기록한 자신의 메모를 편집해 유명한 책인 『담화록』과 『엥케이리디온』으로 출간했습니다.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많은 세기에 걸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위대한 철학자이며 로마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초기 기독교 윤리관, 그리고 심리학 등의 현재 접근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전 세계의 많은 지식인과 사상가 및 철학자에게 지속해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랑 받는 스토아학파 교사는 청중이 그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강연자로 기억되었습니다.
이제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에서 모은 가르침을 읽겠습니다. 에픽테토스의 믿음에 따르면 모든 외부사건은 우리 통제를 벗어나며 그것들을 편하고 차분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면 각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으며 이를 결단과 자제력으로 통제해야 합니다.
♧엥케이리디온
우리 손안에 있는 것들이 있고 우리 손안에 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 손안에 있는 것은 견해와 목표, 욕구와 혐오로 한 마디로 자신이 하는 일이다. 우리 손안에 없는 것은 육신과 재산, 명성과 직책 등으로 한마디로 우리 일이 아닌 것들이다.
우리 손안에 있는 것은 천성적으로 자유롭고 구속과 방해를 받지 않지만 우리 손안에 없는 것은 약하고 의존적이며 제한되고 이질적이다. 그러니 기억하라. 자유를 천성적으로 의존적인 사물 탓으로 돌리고 남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면 장애가 생기며 슬퍼하며 방해받고 신과 인간 모두에게 잘못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것만 소유하고 다른 이에게 속한 것은 그대로 바라보면 아무도 우리를 강요하거나 제한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의 잘못도 찾지 못하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으며 의지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상처 입는 일도 없고 적을 만들지 않으며 어떤 해도 입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위대한 일들을 목표로 세우면 다른 이의 성취에 대해 아무리 작더라도 어떠한 선호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아야 하고, 그중 어떤 것들은 완전히 포기해야 하며 현재를 위해 나머지를 미뤄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을 소유한다면 힘에 더하여 부를 가질 수 있지만 힘을 구하느라 부를 잃게 될 수 있고, 그중 하나만으로 행복과 자유를 얻는 것에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모든 불쾌한 겉모습에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하라. 「너는 겉모습일 뿐이며 절대 진짜가 아니다」 그런 후 우리가 가진 규칙으로 살펴보라. 우선 가장 중요하게 그것이 우리 손 안에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 손안에 있지 않다면 자신에게 소용없다고 말할 준비를 하라.
욕망이란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를 원하는 것이며, 혐오란 그 혐오하는 것을 피하기를 원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자기 욕망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실망하고 자신이 혐오하는 것이 생기면 비참하다. 그러니 제어할 수 있지만 부당한 것만을 피하려 하면 피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겠지만 질병이나 죽음, 가난을 피하려 한다면 비참함의 위험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손안에 없는 모든 것에 대한 혐오의 습관을 버리고 우리 손안에 있는 부당한 것들을 혐오하도록 하라. 그러나 현재를 위해 모든 욕망을 억누르고 우리 손안에 있지 않은 것을 원하게 되면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 우리 손안에 있는 것도 아직 지키지 못하면 정당한 욕망의 대상도 지키지 못한다.
사실상 우리가 무엇이든 추구하거나 피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분별 있고 온화하며 적당히 해야 한다. 어떤 대상이든지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 이용할 수 있거나 부드럽게 사랑하는 것은 그것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며 가장 가볍게 시작하라.
좋아하는 컵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좋아하는 컵일 뿐이고, 그렇기에 깨어져도 참을 수 있고 자식이나 아내를 포옹할 때 언젠가 죽을 사람이니 그들 중 누가 죽어도 견딜 수 있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인간이란 사물이 아닌 그 사물에 대한 견해로 고뇌에 빠진다. 그러니 죽음은 끔찍한 것이 아니며 그랬다면 그것을 소크라테스도 느꼈으리라.
그러나 죽음이란 끔찍한 거라는 관념에 공포가 존재한다. 그러니 방해받을 때나 불안할 때나 슬플 때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말고 자신의 견해를 그 원인으로 여기라. 자신의 불행에 대해 남을 탓하는 것은 배우지 못한 이들의 행동이며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탓하고 제대로 배우면 남이나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것이 아닌 장점에 기뻐하지 말라.
말을 칭찬해야 할 때 「내가 멋지다」라고 한다면 참을 수 있지만 자신이 기쁠 때 「내 말은 아주 멋진 말이야」 하고 말하면 그 말이 뛰어나서 기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 무엇이 내 것인가? 존재의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가 본성과 조화롭게 되면 어떤 이유로건 기쁨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 안의 어떤 선에 대해 기뻐하는 것이다.
항해에서 배가 정박했을 때 물을 얻기 위해 육지에 가며 가는 길에 송로버섯을 딸 수도 있지만 배를 향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 선장이 부르면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에 타지 못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송로 버섯 대신 아내나 자식이 딸려 오는데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선장이 부르면 모든 것을 버리고 배로 달려가며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나이가 많으면 배에서 멀리 가지 않아야 부름이 있을 때 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대로 상황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말며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잘 이겨 나가길 바라야 한다.
질병이란 육신에 있어 장애이지만 좋아서 아픈 것이 아니면 의지에 장애는 아니다. 절뚝거림은 다리의 장애지 의지에 장애가 아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자신에게 이처럼 말하라. 그것이 다른 무언가의 장애가 될지언정 진실로 우리에게 장애는 아님을 알게 된다.
모든 사건에 대해 자신으로 돌아가서 그 상황에 쓸 수 있는 자기 능력이 무엇인지 물을 것을 기억하라. 잘생긴 사람을 만나면 그 상황에 필요한 자제력을 발견하고 고통에는 의연함을, 욕설에는 인내심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게 습관이 들면 존재의 현상에 이제는 압도되지 않을 것이다.
「잃었다」가 아니라 「원상태로 됐다」라고 말하라. 자식이 죽었는가? 원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아내가 죽었는가? 그녀가 돌아간 것이다. 재산을 빼앗겼는가? 그것도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 가져갔어」라고 한다면 그 손으로 준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한 것인데 당신과 무슨 상관인가? 그가 그것을 소유하도록 우리에게 허락할 때 여행자가 여관을 이용하듯이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