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온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자신이라도 바꾸고 주변이라도 바꾸며 영향을 줄 수 있는 누구든 바꾸세요. 여러분은 예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횃불을 든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바뀌어야 하지요…
(스승님, 깨닫는 데 채식(비건)이 중요한가요?) 중요합니다. 중요하죠. 무엇보다 사랑을 가지려면 사랑을 실천해야 하니까요. 신처럼 모든 곳에 편재하고 자비로워지려면 모든 중생을 사랑해야 해요. 그것이 채식(비건)에 담긴 의미이지요. 건강을 위해서나, 예수나 부처가 금해서가 아닙니다. 우린 사랑의 화신이 되어야 하니까요. 우린 이 세상에 걸어 다니는 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린 신이 살듯이 그렇게 살아야 해요. 그러니까 신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죠. 신이 벌해서가 아니라 유유상종인 겁니다. 뭔가에 가까이 있고 싶으면 거기로 가야 합니다. 그 방향으로 가야죠. 신은 모든 중생을 창조하여 자연히 죽도록 하셨으니 우리도 그래야죠. 창조할 수 없다면 최소한 파괴하진 말아요. 성경에 나오는 계명은 『죽이지 말라』 입니다. 『인간만 죽이지 말라』라고 한 게 아니라 『죽이지 말라』라고 했으니 뭘 죽이던 살생이죠.
(영적 치료를 어떻게 생각하시죠? 생계를 위해 치료비를 받으면 이를 해도 괜찮을까요?) 영적 치료는 아주 좋습니다. 환자를 위해선 아주 좋죠. 그러나 치료사에겐 그다지 좋지 않아요. 이런 환자의 업장을 받아야 하는데 때로 그건 감당하기가 아주 힘들 겁니다. 영적 치료는 신 의식의 한 수준일 뿐입니다. 거기 도달하면 치유할 수 있죠. 사람들을 치료하는 이들은 영적으로 아주 강해요. 치료사는 영적으로 매우 강하죠. 그러나 예수가 그랬듯 치료하지 않으면서 치료하려면 좀 더 높이, 훨씬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손을 올려놓지 않고도 고칩니다. 어떤 이가 예수의 옷을 건드리자 병이 나았던 것처럼요. 그녀가 예수께 감사드리자, 그는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라고 했죠. 결코 내가 했다 하지 않았죠. 아버지께서 하신 걸 알았기에 이렇게 말했죠. 『내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셨다』 그것이 영적 치유의 최고 수준입니다. 우린 많은 다양한 수준에 있을 수 있죠. 그러니 당신이 어디 있는지에 달렸지요. 위대한 영적 치료사는 치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냥 낫습니다. 당신을 통해 치료되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그는 그냥 나을 겁니다. 스승, 혹은 예컨대 예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는 결코 내세우지 않았지요. 진정한 스승은 이렇게 겸손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놀림을 받지 않고 이러한 삶을 살도록 가르칠 수 있을까요?) 네, 말했다시피 남들은 여러분을 조롱합니다. 당신이 멋진 남자친구나 아내를 가진 것 조차도요. 왜 겁을 내세요? 이 삶은 오랫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 온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자신이라도 바꾸고 주변이라도 바꾸며 영향을 줄 수 있는 누구든 바꾸세요. 아이들이 이런 길로 가고 싶어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그들을 이끄는 건 우리 의무죠. 여러분은 예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돌 던지고 저주하며 낙인을 찍어 십자가에 매달았지만 예수가 포기했나요? 아니죠! 우리가 기독교인이든 누구든지 간에 신의 길을 가야 해요. 맞습니까? 우린 다른 존재에게 모범이 되어야 해요. 그들을 따라선 안 되죠. 남들은 이미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고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횃불을 든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바뀌어야 하지요. 그럼 누군가가 또 바뀔 것입니다. 처음엔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집에 가서는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아, 이 방법이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럼 나중에 말합니다. 『확실히 더 좋아. 이걸 따라야지』 그렇죠? 그래서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가 예수를 따르잖아요. 그건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길이니까요. 우린 따르지만 실천은 못 했어요. 더 실천해야 해요.
(신은 내면에 있나요? 잠재의식에 있나요? 아니면 정확히 뭐죠?) 신은 내면에 있어요. 그건 의식입니다. 신은 우리 밖에도 있고 어디나 있어요. 신은 당신 자신이죠.
(저는 신의 힘을 느끼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어요. 절 도와주시겠어요? 저는 강하고 신심이 충만해지고 싶어요) 네, 당신은 신을 봐야만 강하고 신심이 충만할 수 있어요. 유감이지만 보지 못한 것을 믿을 수는 없죠. 내가 신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면 신을 믿을 수 있죠, 알겠어요? 신은 (내면의 천국의)빛이고, 신은 당신이 신과 만나는 동안이나 명상하는 동안, 신을 위한 시간 동안에 느끼게 될 사랑입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더욱더 매일, 매 순간 신의 사랑을 느끼게 될 겁니다. 명상을 하지 않아도, 심지어 걷고 있거나 운전을 하고 있어도 자신이 신의 사랑과 하나임을 느낄 겁니다. 경이로운 느낌이죠. 그게 신을 믿는 방법입니다. 알겠죠? 그래야 믿을 수 있어요.
(신이 함께한다는 걸 어떻게 봅니까? 언제 성령이 함께 한다는 걸 느끼나요?) 난 늘 느껴요. 어떻게 아냐고요? (어떻게 보나요?) 내가 보는 걸 말해줄 순 없지만 당신이 똑같은 걸 보도록 해줄 수는 있어요. 내가 마시는 걸 당신은 모르니까요. 내가 마시는 걸 당신은 맛볼 수 없어요. 내가 먹은 거로 당신이 배부르진 않죠. 하지만 난 같은 식사와 같은 주스를 줄 수 있어요. 그럼 당신은 알 수 있죠. 신이 보여줄 수 있는 물질적 꽃이면 좋겠어요. 하지만 신은 꽃 안에도 있으며 신은 여기도 있어요. 이건 신의 아름다움이 물질로 화현한 것임을 알 수 있어요. 이건 신의 물질적 화현입니다. 여러분은 신의 물질적 화신입니다. 그러니 신의 물질적인 면을 느끼고 싶다면 이웃을 만져보고 안아주고 키스하세요. 그게 신의 물질적인 차원입니다. 하지만 신을 추상적 형태로 보고, 빛과 광휘로 보고, 천국에서 보려면 추상적인 방법으로 보여줘야만 합니다. 이해하나요? 추상과 물질이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물질은 이미 봤지요. 난 추상을 보여줄게요. 나중에 우리가 함께 시간을 갖고 조용히 앉으면 알려줄 겁니다. 뭘 하고 어딜 보는지 내가 말해줄 겁니다. 그건 아주 빠릅니다. 내가 어떻게 알까요? 내가 누굴 사랑하면 내가 알까요? 내가 여기 아프리카에 앉아있으면 알까요? 신을 아는 건 그런 겁니다. 아주 분명해요. 거기엔 실수가 없습니다. 난 여러분 스스로 보게 해 줄 뿐이에요. 하지만 물질적으로는 보여줄 수 없어요. 이는 삶의 다른 측면이죠.
(스승님, 올바른 기도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네, 알려줄 겁니다. 그렇게 할 거예요. 설명하는데 두 시간은 걸릴 겁니다. 하지만 깨달음은 빠르며 여러분은 매일 똑같거나 혹은 더욱더 높은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준비된 사람만을 위해 내가 여기 온 겁니다.
(스승님 법문에서 영성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신은 우리와 함께 있나요, 우리의 일부인가요? 입문 중에 우리는 어떻게, 혹은 무엇을 체험하게 되나요?) 여러분은 신을 봅니다. 내면의 천국의 빛으로 된 신의 다른 측면을 볼 것입니다. 그것은 다르며 우주의 멜로디와 비슷합니다. 여러분에게 신은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게 아니라 물소리처럼 곡조가 아름다운 내면의 천국의 소리로 말합니다. 성경에서 신은 천둥소리와 많은 물소리처럼 말한다고 언급되어 있지요. 이걸 체험할 테고 점점 더 많아지죠. 성경이 모두 기록한 것은 아니니까요. 여러분은 체험이 너무 많아질 겁니다. 책을 천 권 써도 부족할 거에요! 성경으론 충분하지 않죠. 하지만 최소한 어떤 참조는 되지요. 모세가 신을 볼 때 커다란 불꽃이었고, 성 요한이 세 번째 천국에 가서 트럼펫 소리를 들었다는 등등.그걸 체험하고 알게 될 겁니다. 이건 우리가 언어로 묘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요. 다만 신의 현존이 가까이 있거나 접촉하게 되거나 다시 기억나면 알게 돼요. 신은 늘 가까이 있죠. 그저 기억하세요.
(오늘날 세상은 전쟁, 오염, 질병 등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이런 위기를 창조했는데 그래도 위대한 영광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네. 하지만 이제부터는 더 잘 할 겁니다. 더 잘 아니까요. 그건 실수였으니 이젠 고쳐야 해요. 영원히 실수만 계속하면서 『좋아, 이 모든 걸 창조했으니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라고 할 순 없어요. 네, 일부는 대혼란을 창조하고 일부는 천국을 창조하니 균형을 잡아야 해요. 우린 오염시키고 숲을 벌목하며 서로 전쟁을 하면서 세상을 파괴하기만 해선 안 됩니다. 깨어날 시간입니다. 우린 이미 충분히 고통받았어요.
(스승님이 세상을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스승님의 법맥을 이을 다른 이가 있을까요? 누가 입문시키나요? 누가 거기서 우릴 인도할까요?) 걱정이 너무 앞서네요. 그때가 되면 알게 됩니다. 신이 결정할 거예요. 신이 계속할 사람이 있는지 결정할 테고 여러분에게 신이 알려줄 겁니다. 당신이 준비되면 모든 게 드러날 겁니다. 당신이 준비가 안 되면 스승이 천 명이 와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준비되면 모든 게 나타날 겁니다. 걱정 마세요. 알겠죠?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우선 입문하세요. 스승은 죽지만 영혼은 죽지 않아요. 그래서 당신이 여행을 마칠 때까지 계속 인도해줄 겁니다. 누구든 한 스승에게 입문하면 그게 계속될 겁니다. 그 스승이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신이 결정하신다면 새 스승이 올 겁니다.
(성경에 나오지요. 『너희 죄를 회개하라. 그러면 너희 기도가 응답 받으리라』 저는 죄인의 기도에 신이 어떻게 응답하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질문은 실제 사실보다 좀 불완전하군요. 이건 많은 동물을 죽여 제물로 바친 사람에게 신이 말한 이야기의 일부이고 신은 말했어요. 『누가 이 모든 암양과 수소들을 죽여서 내게 제물로 바치라고 했느냐? 너희 손은 피로 물들었구나! 너희는 무고한 살생을 그만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며 너희가 요청할 때 고개를 돌리리라』 거기에 해당합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먹는 것은 고사하고 제물로 삼으려고 죽이는 것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죠? 신은 우리가 기뻐하라고 동물을 만들었어요. 죽이라는 게 아니죠. 하여튼 회개한다면 물론 그 뜻은 우리가 했던 일들에 죄책감을 느끼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죠. 게임의 일부이고요. 신을 알아가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신이 아닌 일을 충분히 창조했으니 이젠 신적인 행위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일단 우리가 사악한 행동을 그만두기로 하고 신적 행동으로 돌아가면, 그때 신은 우리에게 곧바로 답을 줍니다. 오늘처럼요. 얼마나 많은 이가 죄를 지었든 여러분이 뭘 했든 상관없어요. 내게 말할 필요 없어요. 여러분이 입문하려고 앉는 순간 신은 모두에게 똑같이 올 겁니다. 죄를 회개한다는 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며 신은 나타날 거예요. 나중에 잠시 앉으면 오늘 신이 나타날 겁니다. 사실 여러분 몇몇은 여기서 이미 (내면의 천국의)빛을 체험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체험한 사람은 손을 들어주시겠어요? 매우 감사합니다. 세상에! 정말 영적이군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아프리카에 처음 왔습니다. 내가 말했듯이 신은 차별하지 않아요. 신은 우리 모두를 사랑해요. 여러분이 신을 원하기만 하면, 신실하게 신을 그리워하기만 하면 신은 바로 거기 있지요. 명상하기도 전에, 내가 알려주기도 전에 벌써요. 맞지요? 신은 모든 사랑이며 다른 건 없어요. 신을 두려워 마세요. 신은 늘 사랑해주며 원하기만 하면 신은 옵니다. 신은 우릴 사랑하고 우릴 축복하며 지금과 이후 우리 삶의 모든 것에 은총을 줍니다.
(파리, 바퀴벌레, 벼룩 등 해충을 죽여야 할까요?) 집을 깨끗이 하는 게 더 좋겠지요. 집의 외부에 예방책을 쓰세요. 냄새가 나면 해충은 가까이 오지 않아요. 그러니 사실 해충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신은 벌을 주지 않아도 여러분 양심이 가책을 느끼니까요. 뭔가를 죽이면 『세상에, 그렇게 작고 무력한데 내가 그냥 죽여버렸구나』라고 느낍니다. 여러분이 깊이 느끼진 못하더라도 양심은 가끔 밤중에 깨어날 테고 좀 물어뜯는 듯한 느낌을 받겠지요. 그것이 개미나 바퀴벌레가 와서 『그걸 해선 안 돼!』라고 상기시키며 깨무는 겁니다.
(꿈이나 꿈꾸는 게 뭔지 설명해 주세요) 꿈에는 세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이런 겁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시나 경고를 하는 천리안 같은 겁니다. 여러분이 아주 깊고 깊은 잠에 빠지면 미래나 과거를 더 인식하는 겁니다. 다른 종류의 꿈은 여러분이 낮에 바랬던 것이나 잠들기 전 낮에 깊이 생각했던 것이 꿈에 나타난 겁니다. 낮에 받은 인상이 남아 있는 것뿐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꿈의 종류는 그냥 터무니없는 것으로 아무 의미 없지요. 그냥 두뇌에 모인 온갖 쓰레기인데 여러분이 잘 때 너무 가득 차서 흘러나오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동물을 도살하는 걸 성경에서 읽었는데요. 그게 죄인가요?): 고대인들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걸 믿었어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요. 사람들은 심지어 몸속의 신에게 바치려고 매일 동물을 도살합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각자의 선택으로 신을 알게 됩니다. 누구는 빠른 걸, 누구는 느린 걸 선택해요. 정말 이생에 지쳤으며 진정으로 신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가서 완전한 입문을 하세요. 알지요? 이제 여러분이 어떤 선택에 머물지, 어떤 선택을 계속할지, 혹은 다음에 완전함을 선택할지 결정하세요. 다음 선택을 하거나 이 선택에 머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