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호리 스코보로다는 18세기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종교 음악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중세에서 현대로 전환기에 아주 중요한 철학자의 한 명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신성에 대한 깊은 믿음과 물질적 가치보다 영적인 삶을 보여줍니다. 스코보로다의 글은 소크라테스의 대화체 형식으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재치 있고 극적이며 주제는 항상 삶의 행복과 감사를 강조합니다. 그는 도덕주의자이며 『소크라테스』로 불렸고, 그의 작품은 사색과 자기 성찰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3일 전 그는 가장 친한 친구와 지내려고 갔습니다. 그는 매일 집을 나섰고, 나무 밑에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때가 왔다고 알리며 그대로 누워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요청한 비문입니다. 『세상은 나를 붙잡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삶의 진정한 행복에 대한 다섯 여행자의 대화』에서 발췌한 그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지혜 『지혜는 독수리의 예리하고 멀리 보는 눈과 같고, 덕은 사슴의 재빠른 종아리와 연결된 강건한 다리와 같습니다. 이 신성한 합일을 우화가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한 여행자가 여러 나라와 왕국을 지나다가 다리를 잃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는 팔과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돌아가려 했지만 아주 힘이 들었다. 마침내 아버지의 집이 보이는 산꼭대기까지 기어올랐을 때 그는 팔과 손마저 잃고 말았다.
그 순간 그의 예리한 눈이 즐거운 갈망을 품고 강과 숲과 절벽을 가로지르고 피라미드 같은 산봉우리들을 넘어 멀리서 반짝이는 곳을 응시했다. 그곳은 그의 아버지와 평화를 사랑하는 온 가족의 집이며 그의 여행에서 노고의 끝이고 절정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보는 자는 팔과 다리도 없이 복음서 이야기 속에서 나사로를 바라보던 부자처럼 자신을 괴롭힐 뿐이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자 뜻밖에도 이상하고 불쌍한 광경을 보았다. 한 장님이 마치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길을 따라 조심해서 귀 기울이며, 지팡이로 좌우를 두드리며 길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다가오면서 탄식했다. 『우리 나날을 허무하게 보냈습니다, 오 주님! 당신의 길을 말씀해 주소서. 아, 저의 방황은 끝이 없습니다!』 그는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것을 반복하고 이런 탄식의 말을 자신에게 했다.
「친구여, 당신을 놀래게 할까 두렵소만 당신은 누구입니까?」 잘 보이는 남자가 물었다. 「34년간의 여행 중에 당신이 내 길에서 만난 첫 사람입니다」 눈이 먼 남자가 대답했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다 유배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라비아에서 엄청난 태양의 열기에 시력을 잃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신 부친은 누구죠?」 「그는 미르고로드 산성에 사십니다. 그분 이름은 우라누스, 내 이름은 행동가입니다」
「세상에, 설마! 내가 당신의 형이오」라며 보이는 남자가 외쳤다. 「내 이름은 보는 자요」 놀라운 행복은 언제나 눈물로 표현된다. 눈물을 펑펑 쏟은 후 눈이 여전히 축축한 장님이 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하는 형님! 당신에 대해 들은 적이 있고 이제는 제 마음의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스승이 되어 제 슬픔을 끝내주십시오. 노동은 저의 기쁨입니다.
하지만 끝없는 비틀거림에 모든 힘이 빠졌어요」 「미안하구나」밝은 눈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사랑하는 아우야, 너를 도울 수가 없구나. 여행자로서 나는 두 다리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두 다리는 사고 없이 어디든 데려다주었지만 도중에 마주친 험준한 산들이 내게서 두 다리를 빼앗아 갔기에 팔과 손으로 여행을 계속해야 했다. 이곳에서 나는 그것들마저 잃었다.
이제 나는 걷지도, 땅을 기어가지도 못한다. 많은 사람이 나를 고용하려 했지만 나는 기어갈 수조차 없기에 그들에게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장님이 말했다. 「당신은 빛이며 제게는 소중한 짐입니다. 저의 보물인 당신을 등에 업고 가겠습니다. 당신의 밝은 눈이 제 몸의 영원한 주인이 되고 모든 기관의 머리가 되게 해주십시오. 육체란 광기의 텅 빈 길에서 저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이 근원적인 어둠의 고통을 끝내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말이니 제 어깨에 올라타 저를 인도하소서, 사랑하는 형님이자 스승님」 「아우야, 내 기꺼이 올라타서 잠언의 저자가 쓴 신의 말씀의 진리를 보여주겠다. 「형제가 형제를 돕는 건 굳건하고 높은 성읍과 같으며 건실한 왕국처럼 튼튼하다」 자, 신의 놀라운 업적을 보라. 두 남자가 하나가 되었다. 둘을 혼합하지 않고 두 일족의 영혼에서 한 여행자가 탄생했지만 서로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다.
이 유례없는 여행자는 오른쪽과 왼쪽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중앙의 길을 따라 강과 숲, 갈라진 틈과 절벽 등을 쉽게 건너고 가파른 산을 넘어 높이 솟은 평화로운 도시에 기쁨으로 올랐다. 거기서 그는 빛나고 향기로운 공기 속에서 단정한 한 무리의 주민이 평화와 사랑 속에 숨 쉬고 손뼉을 치며 문에서 그를 기다렸다. 옛날부터 언제나 계시던 우라누스가 직접 성문 안에서 그를 거룩한 포옹으로 받아들였다』
♧자연과 행복 『자연은 가장 자비로운 어머니요 우리의 모든 기쁨의 아버지이며, 예외 없이 숨 쉬는 모든 창조물에 행복의 길을 열어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행복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매력적인 겉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굳건한 토대처럼 붙잡고 움켜쥔다. 논의의 부족이 우리 불행의 근원이다.
그것은 우리를 죄수로 만들고, 쓴 것을 달다 하고 단 것을 쓴 것이라 한다. 우리가 자신과 논의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친구여, 판단하고 우리의 길을 고치자. 선행을 시작하기에 절대로 늦지 않았다. 우리의 힘이 있는 그곳을 찾자. 어떤 기도가 신께 가장 달콤할지 생각해 보자. 가장 좋은 것을 말해보라. 그대가 그것을 찾는다면 행복도 발견하고 동시에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코 많은 것을 알지 못할 수많은 사람을 상상해보라. 병든 자와 노인, 불구의 몸으로 태어난 자들을 기억하라.
그대는 분명히 가장 자비롭고 세심한 어머니인 자연이 계모처럼 행동하고 얼굴 앞에서 행복의 문을 닫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간청하노니 온전히 지혜로운 신의 섭리를 좁은 범위 안에 가두지 말고, 자연의 전능한 자비를 비방하지 말라. 자연은 인간 종족의 선택된 소수만이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창조물을 선하게 대한다.
자연의 부지런한 섭리 속에서 가장 하찮은 벌레도 행복을 성취할 수 있을 만큼 만사를 준비했으므로 만약 어떤 것이 부족하다면 물론 그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두더지는 눈이 없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새들은 배 만드는 법을 전혀 모르지만 그들에게 그러한 지식은 필요치 않다. 필요한 자는 알게 된다. 백합은 제조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것 없이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