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구원의 열쇠로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생활방식과 주님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가까이 두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소개합니다. 이 현명한 주교는 천국의 영원한 지복으로 들어갈 열쇠로 회개하고 고결한 삶을 살며 신을 기억함을 통해 구원받을 필요성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21권 27장
남에게 베풀면 커다란 죄를 날마다 저질러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에 반박하며 그것을 통해 구세주께서 가르침을 주셨다. 우리가 약하고 어두운 생활을 하는 동안 아무리 의롭게 살더라도 역시 죄를 짓기에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하며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야만 우리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신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루하루 안심하고 죄를 짓기 위한 확신을 하기 위해 이런 기도를 하거나 인간의 법을 무시하고 우리 행동에 관해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설령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지라도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하느님도 옛 율법의 제사장들에게 이와 같은 취지로 그들에게 명하신 제물에 관해 먼저 그들 자신의 죄를 위해 바치고 그 다음은 사람들의 죄를 위해 바치라고 하셨다. 위대한 주인과 주님의 그 말씀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너희가 그들 죄를 용서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가 어떤 죄를 지었든 용서하실 거라고 그분은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가르치신 것은 매일의 기도였으며 그분의 말씀은 확실히 이미 행동이 옳은 제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이 말씀한 『너희 죄』는 무엇이며 행동이 옳고 정결한 사람조차 벗어날 수 없는 죄는 무엇일까?
이 기도를 통해 상습적으로 죄악에 빠질 기회를 찾는 이들은 주께서 너희의 작은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기에 너희의 죄에 주께서 대죄를 포함하시길 원하셨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셨던 사람들의 특징을 고려하면 작은 죄가 아닌 『너희 죄』라는 표현을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 사람들에겐 더는 대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너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부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삶을 완전히 개혁함으로 피해야 하는 대죄도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용서되지 않는다. 의인의 삶에도 따라붙는 아주 작은 죄조차 그런 조건 없이는 용서받지 못하는데 많은 대죄에 관련한 자는 그런 극악무도한 죄를 짓는 걸 멈추었더라도 여전히 자신에게 지은 죄를 용서하길 냉혹하게 거부한다면 그들이 용서받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주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것이 사도 야고보 또한 『심판은 긍휼을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라고 말씀하신 뜻이다. 한 종의, 만 달란트 빚을 탕감하였던 주인이 그 종이 자신에게 백 푼을 빚진 다른 종을 무자비하게 대했다는 이유로 후에 다시 그 빚을 갚으라고 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도 야고보께서 덧붙인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는 말씀은 약속을 지키고 자비로운 자녀들에게 적용된다. 그렇게 영원한 거처로 받아들여진 사람들의 삶이 성인의 도움 없이 자신을 구하기에, 충분한 그런 사람들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경우는 특히나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동일한 성서의 권위를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는 이들에겐 회답으로 충분하지만, 그것들을 잘못 해석해서, 성서가 가르치는 대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미래를 상상하는 이들에겐 그렇지 않다. 지금 나는 약속대로 이렇게 회답하면서 이 책을 덮는다.
22권 1장
천사와 인간의 창조
약속대로 여기에는 하느님의 도성의 영원한 축복에 관한 논의가 포함된다. 이 축복은 영원하다고 이름 붙여졌다. 왜냐하면 복음의 말씀에 따르면 『그 나라는 무궁하리라』이기 때문이다. 그 도성의 모든 백성은 이제 거룩한 천사들이 결코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처음 즐기며 불사가 된다. 이는 그 도성의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분은 그것을 약속하셨고, 거짓말할 수 없고, 많은 그분의 약속을 이미 지키셨으며, 그분은 이것 또한 행할 것이라고 믿기를, 지금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지 않은 많은 친절도 베푸셨다. 바로 그분이 태초에 모든 보이는 것과 지적인 존재로 가득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중에 최고의 것은 지성을 부여하고, 그분을 관상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우리가 신성한 천국의 도성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하나 되는 그 영들이다. 그 도성에선 하느님 자신이 공동의 음식이자, 양분으로 그들을 유지하고 축복하는 물질이다. 바로 그분이 이 지적인 인간에게 신을 버리고 싶다면 즉, 그의 축복을 버리고 싶다면 바로 고통스럽게 되는 그러한 자유의지를 주셨다.
또한 바로 그분께서 동일한 자유의지로 인간이 자신을 바로 세우게 하셨다. 인간은 땅에 발을 붙인 동물이지만 창조주의 뜻에 부합하면 하늘로 들어가기에 합당하며 하느님을 버린 자들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버림을 받는다. 바로 그분은 인간이 신을 버리고, 그분 계율을 어김으로 죄를 지을 것을 예지하실 때, 자유의지라는 능력을 박탈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이 어떤 선을 드러나게 할지 예견하시고 이런 인간에게 아무리 정당하고 정의롭게 죄를 선고하셨어도 지금 그분이 하는 것처럼 그분의 은총으로 많은 사람을 모으며 타락한 천사들로 인해 생긴 공백을 채우고 수리함으로 사랑받는 천국의 도성을 그 백성 전체에게 빼앗기지 않으면서 여전히 더 넘치는 인구 속에서 기뻐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