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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채식인): 신국론 - 진정한 중재자 9권과 10권 발췌,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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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요한 저서 『신국론』을 계속 읽어드립니다. 그는 신에게 헌신하는 것과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정화하고 새롭게 하는 진정한 중재자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10권 6장: 참되고 완전한 제사에 대하여

『참된 제사는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 행하며 그 안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 및 궁극의 목적과 관계되는 모든 일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 자비를 보여주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드러낸 것이 아니면 제사가 아닌 것이다. 비록 인간이 행하거나 바치더라도 그 의미하는 바를 제사로 부르는 자에게 제사는 신성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성되고 하나님께 바친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이니 그 사람이 곧 제물이다. 이것은 인간 각자가 자신에 보여주는 자비의 한 부분이다.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너희 영혼에 자비를 베풀라. 절제를 통해 육신을 다스릴 때 우리 몸도 또한 제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우리 의무를 행한다면 우리 일원을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넘겨주지 않고 의로움의 도구로 하나님께 바친다. 사도는 이런 제물을 권면하며 말씀하길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 그렇다면 영혼은 육신을 더 낮은 종복이나 도구로써 육신을 올바르고 하나님과 관련한 제물로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영혼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 얼마나 큰 제물이 되겠느냐? 그렇게 되려면 주님의 사랑의 불로 태워지고 주님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그분을 기쁘게 하며, 세속적 욕망의 형체를 잃고 변치 않는 사랑스러운 형상으로 바꿔져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사도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처럼 참된 제사는 자신과 다른 이들, 그리고 하나님께 바치는 자비의 행위이다. 자비의 행위에는 곤경에서 건지며 행복을 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 그런 선을 제외하곤 다른 행복이 없기에 성경말씀에 따르면 「우리 행복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온전히 구원된 도성, 거룩한 공동체를 하느님께 바치라는 성경말씀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신 대제사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종복이냐에 따라 이 영광스런 머리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그분 제사는 이렇게 이 안에서 자신을 바쳤다. 이에 따라 주님이 중재자이고 이런 제사에서 주님이 우리 제사장이다. 따라서 사도께서 우리에게 우리 몸을 산 제물로 거룩하고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로 바치라고 권하실 때 이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서 우리의 참 제사에 대해 그는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으로 모든 이에게 내가 말하나니 너희 가운데서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보다 더 높게 생각하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믿음의 척도로 대하듯이 진지하게 생각하라. 우리에게 하나의 몸에 많은 부분이 있듯이 모든 부분이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구세주의 은혜에서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의 직분에서 한 몸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참된 제사이다.

24장: 오직 하나의 진리의 성육신이 인간 본성을 정화하고 새롭게 한다.

인간은 오직 성육신으로 정화된다고 한다. 그 참되고 선하신 구세주는 겸손으로 낮아지시고 죽음의 운명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시지만 악하고 기만하는 중재자는 불멸의 은혜와 사악한 인간에게 기만의 도움을 원하고 약속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선하고 참되신 중재자께서는 죄가 악한 것이지 육신의 실체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셨다. 그 분은 죄가 없이도 육신을 인간의 영혼과 함께 취할 수 있고, 지닐 수 있고, 죽음으로 이를 벗을 수 있고, 부활로 더 나은 것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또한 죽음 자체가 죄에 대한 벌이더라도 우리를 위한 중재자에 의해 죄 사함을 받게 되고 우리의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로움을 위해 그 기회를 섬기고 견디셨다.

그분은 비록 죽으셨으나 당신 죄 때문에 죽지 않으니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 성육신은 그리스도 안의 육신도 인간의 영혼도 아니고 모든 것을 만든 말씀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은 육신의 덕으로 정화되지 않고 말씀의 덕으로 정화된다. 이를 이르되 「말씀이 육신이 되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내 살을 먹는다는 (요한복음 6: 53 - 55) 신비스런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는가?」라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갔다. 주님은 남아있는 이들에게 답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신은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성육신, 즉 사람의 영혼과 육신이 믿는 자의 영혼과 육신을 정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이신지 물었을 때 예수님은 성육신이라고 답하셨다. 육욕을 가지고 약하여 죄를 범하기 쉽고 무지의 어둠에 둘러싸인 우리 인간은 우리와 같으시되 우리와 다르신 주님에 의해 정화되고 치유되지 않는다면 이걸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지만 의롭지 못했다. 한편 그분의 성육신은 인간성을 가졌지만 의롭고 죄가 없었다. 믿음을 잃고 타락한 이들에게 뻗어진 손길이 바로 이 중재자이다. 그분은 바로 천사들을 통해 전해진 씨인데, 천사들의 반포로 율법이 주어졌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이 중재자가 올 것이 약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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