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세네카로도 알려진 세네카는 저명한 로마 철학자, 웅변가, 정치가, 비극 작가였습니다. 그는 1세기 중엽 로마에서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여겨집니다.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세네카는 삶의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철학과 수사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서기 50년에 로마 5대 황제 네로의 가정교사가 되고, 4년 후엔 고문이 되었죠.
세네카의 작품은 후세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사상은 르네상스기에 스토아철학의 부활에 나타났으며, 『도덕과 심지어 기독교 교화의 철인으로 존경받고 칭찬받는 현자이자 문학적 문체의 대가, 극예술의 귀감』으로 칭해졌습니다.
세네카의 철학적 작품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스토아철학의 발전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철학적 저술 외에도 그의 업적은 연극, 비극, 에세이, 그리고 도덕적 문제를 다룬 편지를 포함합니다.
오늘은 세네카의 유명한 에세이 『삶의 짧음에 대하여』를 소개합니다. 여기서 이 스토아 철학자는 시간의 본질과 원리~ 그것의 진정한 가치와 인간으로서 우리가 적절한 방식으로 보다 뜻깊게 추구하며 목표로 나아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세네카는 이 에세이를 장인 파울리누스에게 썼습니다.
삶의 짧음에 대하여~루시우스 세네카
파울리누스, 대다수의 인간은 자연의 악의에 대해 통렬히 불평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명이 짧게 태어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조차도 너무 빠르고 서둘러 달려가기에, 극소수의 인간 외에는 모두가 마지막에야 살려고 준비한 삶을 찾기 때문입니다.
단지 평범한 무리와 생각 없는 군중만이 인간을 우주의 병폐로 여기며 한탄합니다. 이 같은 감정은 유명했던 사람에게도 불평을 불러왔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간이 짧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죠.
인생은 아주 길며, 아주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아주 넉넉하게 주어졌습니다. 만약 그 모든 시간을 잘 사용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사치와 부주의함에 낭비할 때 좋지 않은 목적에 몰두하고, 결국 기본적인 필요에 강요당하며, 시간이 지나간 것을 깨닫기도 전에 사라졌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즉, 우리가 받는 삶은 짧지 않지만 우리가 짧게 만들고,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지만 낭비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재산이 나쁜 주인의 손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흩어지는 것과 같지요. 재산이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좋은 후원자에게 그걸 맡긴다면 잘 투자해 늘어나듯이, 제대로 관리하면 인생은 충분히 길지요.
왜 우리는 자연에 불평하나요? 그 사용법을 안다면 자연은 친절히 대해주며, 인생은 길지요. 그러나 누구는 탐욕에 사로잡혀 만족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쓸모없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합니다.
누구는 포도주에 취하고, 누구는 게으름에 빠지고, 누구는 언제나 타인의 결정에 달린 야망에 진을 빼며, 누군가는 상인의 탐욕에 이끌려 모든 땅과 모든 바다에서 이득을 얻으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전쟁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하며, 어떤 이는 언제나 남을 위험하게 하거나 자신에 대해 염려합니다. 어떤 이는 자진해서 거물들과 어울리며, 감사하지도 않는데 노예처럼 봉사하며 지쳐가고, 많은 사람이 남들의 재산을 뒤쫓거나 자기 재산에 불평하느라 바쁩니다.
많은 사람은 어떤 일정한 목표를 따르지 않고 끊임없이 불평하며, 변덕을 부리고 언제나 새로운 계획에 빠져들지요. 누구는 자기 길을 정하는 일정한 원칙이 없으며, 뒹굴고 하품하는 동안 운명이 무심코 덮칩니다.
그런 일이 분명히 일어나기에, 나는 가장 위대한 시인이 신탁의 형식으로 전한 말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사는 삶은 아주 일부이다』 인생에서 그 나머지는 삶이 아닌 시간일 뿐입니다.
악이 우리를 옭아매고 사방에서 에워싸며, 우리가 새롭게 일어나서 눈을 뜨고 진리를 인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은 우리를 타락하게 하고, 욕망에 사로잡혀있을 때 우리를 억누릅니다. 악의 희생자는 결코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지요.
만일 약간 벗어날 기회가 있더라도, 폭풍이 지난 후에도 계속 파도치는 깊은 바다의 물처럼 이리저리 뒤척이며 욕망에서 쉴 틈이 없습니다. 내가 그 악을 인정받은 악인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하나요? 사람들이 바라보는 성공한 자들을 보세요. 그들의 복이 그들을 숨 막히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부귀는 짐인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달변과 힘을 발휘하기 위한 매일의 노력에 피를 말리는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끝없는 쾌락으로 창백한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위에 몰려든 상담자의 압력으로 자유가 없는가요!
즉, 가장 아래에서 가장 위까지 이 모든 자의 명단을 보세요. 이 사람은 변호인을 원하고 부르는 자에 대답하며, 저 사람은 재판을 받고 자신을 변호하며, 형량을 선고합니다. 아무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누구나 남들을 위하여 헛수고합니다.
당신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에 관해 물어 보세요. 그러면 그들을 구별하는 표식들이 다음과 같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A는 B와 어울리려 하고, B는 C와 어울리려 합니다. 아무도 자기 주인이 아니죠.
그리고 어떤 사람은 가장 분별없는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들은 자기 상관의 무례함을 불평합니다. 그들이 너무 바빠서 대화하길 원할 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돌볼 겨를도 없는 상황에서 남들의 자존심에 대한 불평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결국 당신이 누구이든지 위대한 사람은 가끔 그의 얼굴이 무례하더라도 당신을 쳐다봅니다. 당신의 말을 듣기 위해 거들먹거리기도 합니다. 당신이 자기 옆에 서는 걸 허락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자신을 보고,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지요. 그러므로 그런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에게 기댈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런 일을 할 때, 남들과 함께하길 바라지 않더라도 자신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시대의 모든 뛰어난 지성들이 이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결코 인간 정신의 이 짙은 어둠에 대한 의혹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었지요. 사람은 자기 땅을 차지함에 고민하지 않고, 자기 땅의 경계에 대한 사소한 다툼이 있으면 돌과 무기를 들고 덤벼들지만, 자기의 삶을 침해하는 것은 용납합니다.
아니라면 자기 삶을 소유할 자에게 결국엔 스스로 가기도 합니다. 자기 돈을 기꺼이 나누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자가 자기 삶을 나누어 주나요? 사람들은 재산을 지키는 데는 인색하게 굴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일엔 인색한 것이 맞더라도 가장 방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나는 노인의 모임에서 누군가를 붙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인간 생명의 가장 먼 한계에 다다랐지요. 백 년이 당신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거나, 심지어 그것을 넘어섰지요. 지금 인생을 돌아보고, 그걸 헤아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