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세네카의 도덕: 행복한 삶, 혜택, 분노와 관용에 대하여 제 2장 세네카의 행복한 삶』에서 세네카의 철학을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저자는 진실하고 완전한 행복과 미덕으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지혜와 그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제 2장, 인간의 행복은 지혜와 미덕에 기반한다. 첫째, 지혜에 대하여
완전히 지혜로운 자는 완전히 행복하다. 지혜의 시작은 오히려 우리 삶을 쉽게 만든다. 우리가 매일 명상으로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선의가 훌륭한 습관이 되지 않는 한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말한 바를 실천해야 한다. 철학은 대중적 과시의 대상이 아니며, 말뿐인 것이 아니라 행위가 있어야 한다. 기쁨을 위한 오락이나 여가를 위한 취향이 아니라 마음을 빚어내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며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준다. 키를 잡고 모든 위험을 헤쳐나가며 이것 없이는 안전할 수 없다. 매시간 우리가 이용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삶의 모든 의무, 부모에 대한 효심, 친구에 대한 우정, 불우한 자에 대한 자선, 조언에서 분별을 알려주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평화를 주고, 탐내지 않는 부를 준다. 현자에게 의무를 행하지 않도록 하는 삶의 상황은 없다. 운이 좋다면 그것을 조절하고 운이 나쁘면 그것을 정복하며. 재산이 있다면 풍족하게 덕을 베풀지만 재산이 없다면 가난하게 산다. 조국에서 할 수 없다면 추방된 채 그것을 행하고, 지휘권이 없다면 일반 병사의 일을 수행할 것이다. 어떤 이는 사나운 짐승을 길들이는 기술이 있어 사자가 사육자를 껴안고 호랑이가 입맞춤하며 코끼리가 무릎 꿇도록 할 것이다. 가장 큰 어려움에 부닥친 현자의 경우도 이와 같다. 그 속에 비참하게 있지 않고 일단 그들이 현자에게 온다면 완전하게 길들일 것이다.
현자들이 경작, 건축, 항해 등을 고안했다고 생각하는 자는 자신이 현자에 의해 현자가 되었기에 어쩌면 그들이 옳을 것이다. 지혜는 손가락이 아닌 마음을 가르친다. 손재주와 춤, 무기와 요새화는 사치와 불화의 작업이었다. 지혜는 우리에게 자연의 길과 일치와 화합의 기술을 가르치며, 도구가 아니라 삶을 지배하고, 단지 생존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지혜는 우리에게 선하고 악한 것과 무엇이 그렇게 보이는지 가르쳐 주고, 진정한 위대함과 거만함을 구별하도록 가르친다. 지혜는 우리 마음의 때와 허영심을 없애주며, 우리의 생각을 천국으로 끌어올리고 지옥으로 데려간다. 지혜는 영혼의 본성, 힘과 능력에 대해 말한다. 사물의 첫 번째 원칙과 섭리의 질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혜는 우리를 물질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고양하며 만유의 진리를 되찾는다. 지혜는 자연을 탐색하고 삶에 법칙을 부여하며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가 신께 복종하면 그것으로 신께 충분하다』 지혜는 모든 사건을 섭리의 작용으로 본다. 사물에 진정한 가치를 정하고 그릇된 의견에서 구원하며 후회가 따르는 모든 쾌락을 비난한다.
지혜는 영원하지 않은 선을 승인하지 않는다. 내면의 행복 외에 다른 행복은 필요치 않은 사람만 행복해진다. 이것이 인간 삶의 행복으로 타락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행복이며, 하늘의 본성과 별들의 영향과 또한 그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디까지 작용하는지를 탐구하며, 비록 그들이 우리의 태도를 형성하지는 않지만 그 생각은 우리를 끌어올려서 영광스러운 일을 하도록 만든다. 『올바른 이성은 인간 본성의 완전함』이며, 지혜가 그것을 좌우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 지혜에서 비롯된 위대함은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지혜의 결의는 자유롭고 절대적이며 한결같지만, 어리석음은 같은 것에 오래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의도를 바꾸고 자신을 지겨워한다. 꾸준함과 신중함이 없으면 행복이 있을 수 없다.
현자는 얼룩을 묻히지 않고 글을 쓰며, 한 번 좋아하면 영원히 인정한다. 악이나 불안정한 것은 허락하지 않지만, 휘청대거나 비틀거리지 않고 나아가며 절대 놀라지 않는다. 항상 진실하게 살고 자신에 확고하고, 어떤 일이 닥쳐도 행운이든 불운이든 이 위대한 거장은 그것을 유리하게 만든다. 반대하거나 망설이는 사람은 아직 안정하지 못했지만 그 중심에 미덕이 관계되는 곳이라면 반드시 일치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 모든 덕은 일치 속에 있고, 모든 악은 불화 속에 있다.
현자는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여전히 행복할 것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이성을 따르며, 열정이 아니라 조언에 의해 자기 행동을 통제한다. 그는 운명이 극단적으로 가혹하거나 불길과 칼날의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모든 사고에 그것이 자신을 무너뜨리듯이 놀란다. 현자는 무엇도 억지로 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선택한다. 그는 인생의 범위와 끝을 스스로 제안한다. 그는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따르고 방해되는 것은 피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무엇이든 만족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원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가졌다. 삶에서 가장 큰 일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현자는 위험을 겁내거나 유발하지도 않지만, 용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신중하다. 감금과 상처, 속박에 대해서 단지 거짓되고 모호한 공포로 간주한다. 현자는 무슨 일을 하든 잘하는 척하지 않고 하는 일을 잘하려고 한다. 기술은 하인일 뿐 지혜가 명령한다. 일이 실패하더라도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다. 의심스러운 경우 조심하고, 번영할 때 절제하고 역경에서 의연하며, 모든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모든 상황을 개선하며 그것을 자신의 운명에 유익하게 만든다. 고백하건대 그에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어떤 사건들, 가령 육체의 고통, 자녀와 친구의 상실, 조국의 파멸과 황폐화도 그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사람은 이러한 재앙에 민감해지지 않도록 돌이나 철이 되어야 한다. 또한 육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견딜 가치가 없다.
지혜의 학교에는 진보에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첫째는, 지혜를 보지만 지혜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웠지만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들은 재발의 위험은 벗어났지만 설령 그 위험이 지나갔다고 해도 여전히 그 병의 아픔 속에 있다. 병을 통해 나는 별로 원하지 않거나 전혀 원하지 않는 일에 열중하게 하는 악에 대한 고집이나 나쁜 습관을 이해한다.
둘째는, 한 계절 동안 욕망에 굴복했지만 아직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셋째는, 많은 악을 없앴으나 전부 없애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탐욕스럽지는 않지만 화를 잘 내고, 욕망은 없지만 어쩌면 야심적일 수 있다. 어떤 경우엔 충분히 굳건하지만 다른 경우엔 무척 약하며, 죽음은 무시하지만 고통에 움츠러드는 자들도 많다.
현자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들에겐 불균형이 없다. 어떤 이는 더 상냥하고 어떤 이는 더 준비됐고 어떤 이는 말을 더 잘하지만 그들은 모두 똑같이 행복하다. 천체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위대함에 어떤 정도가 있다. 공공과 가정의 문제에서 현자는 의사, 변호자, 법관의 조언이 필요할 수 있지만, 더 중대한 문제에서 현자의 축복은 자신의 덕을 전하며 얻는 기쁨에 있다. 거기에 다른 것이 없다면 그는 스스로 지혜를 얻는데 몰두한다. 그것이 마음을 완전한 평온함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