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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 생활: 무소부재한 본질 - 스리 오로빈도(채식인),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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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무소부재한 본질

우리가 비존재에서 존재가 나왔다고 말할 때, 우리는 시간의 관점에서 시간을 초월한 것을 말하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영원한 무의 역사에서, 존재가 영원한 무에서 나온 놀라운 날이나 환상의 모든 것이 영원한 공으로 되돌아갈 똑같이 무서운 다른 날은 언제가 될까요?

실재와 비실재를 모두 확인해야 한다면 둘이 동시성을 가진 것처럼 이해해야 합니다. 이 둘은 서로 섞이길 거부하지만 서로를 허락합니다. 시간의 측면에서 말하면 이 둘은 영원합니다.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존재와 단지 영원한 비존재를 누가 납득까요? 모든 경험을 그렇게 부정하면서 어떻게 모든 경험을 설명할 해결책을 찾을까요?

순수한 존재는 알 수 없는 존재 자체로 모든 우주 존재의 개방적 토대가 됩니다.

우리는 비존재라는 이름을 모든 우주 존재에서 벗어나고, 말하자면 우주 의식이 심지어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초월적인 것에서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실재적 존재의 가장 긍정적인 용어에 벗어난 것에 주었습니다. 그것들을 자신의 실제 표현으로 부정하진 않지만, 모든 표현이나 어떤 표현으로도 그 한계를 부정합니다. 침묵이 활동을 허용하듯이 비존재도 존재를 허용합니다.

동시에 긍정과 부정이되 서로 파괴하지는 않지만, 모든 대립처럼 서로 보완함으로 현실로서 의식적인 자아 존재에 대한 동시적 인식과 같은 실상 너머의 알 수 없는 것을 깨어난 인간 영혼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열반의 상태를 얻으면서도 세상에서 강력하게 행하고, 그의 내면 의식은 인간이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인간성으로 행동하시며 지상에 살면서 성과를 얻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이런 점을 심사숙고하면 그들의 자기 확신의 폭력이 얼마나 하찮고, 잘못된 구분 안에서 우리가 쓰는 말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기 시작합니다. 또한 우리가 브라만에 지운 한계가 미지의 한 측면에 집중하고, 나머지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개별적 정신의 경험이 편협함에서 생긴 것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상상하거나 알 수 있는 절대성을 특정한 상대성 이론의 용어로 너무 엄격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의견과 부분적 경험에 대해 자신의 의견과 부분적 경험을 격렬하게 구별하고 주장함으로 하나이고 동일한 것을 주장합니다. 기다리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우리는 자기완성을 위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가능한 한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유연하며 가장 보편적 확신을 찾고, 그것에서 가장 크고 포괄적인 조화를 발견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개인의 의식이 상대적 존재가 붕괴한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자아도 맞지 않은 개념으로 보이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식합니다.

침묵 너머의 침묵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체험 전부가 아니며 유일하고 모든 것을 배제한 진리도 아닙니다. 우리는 열반, 즉 이 자아 소멸이 내면의 영혼에 절대적 평화와 자유를 주지만 무욕을 수행하고 외적으로 효과적 행동을 하는 것과 관련됨을 발견합니다.

외적으로 사랑, 진실, 의로움이란 영원한 진리를 행하면서 내적으로 완전한 부동의 비인격성과 적멸의 이 가능성이 어쩌면 부처님 가르침의 진정한 요지일 것입니다. 자아와 개인 활동의 속박보다 우월하며, 변덕스러운 형상과 관념을 동일시하고 육체적 출생의 어려움과 고통에서 도피하는 하찮은 이상은 그 가르침이 아닙니다.

어쨌든 완전한 인간이 자신 안에서 침묵과 행동을 결합하듯이, 완전히 자각한 영혼도 존재와 우주에 대한 지배력을 잃지 않고 비존재의 절대적 자유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때 그것 자체가 우주에서 신적 존재의 영원한 기적을 끊임없이 재현하지만, 언제나 그것을 넘어서고 심지어 자신을 넘어서죠.

그 반대의 경험은 비존재에 대한 개인적 집중일 수 있으며, 우주 활동으로부터 망각과 개인적 물러남과 함께 하며,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영원한 존재의 의식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주 의식에서 영과 물질을 조화시킨 후에 우리는 초월적 의식 안에서 만물의 최종적 긍정과 부정의 조화를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긍정이 미지 안의 상태나 활동의 주장임을 발견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모든 부정은 그 상태나 활동으로부터,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에 대한 주장입니다. 미지는 우리에게 최고이고, 경이롭고 형언할 수 없는 것으로 우리 의식에 계속 자신을 드러내고, 의식이 만든 형식에서 끊임없이 벗어납니다.

이것은 거짓에서 더 큰 거짓으로, 만물에 대한 최후의 부정으로 우리를 이끄는 사악한 영혼이나 괴상한 마술사가 아니라, 심지어 여기서 우리의 지혜를 넘어선 현자로서 우리를 현실에서 더욱 심오하고 더 광대한 현실로 인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하고 방대한 것을 찾을 때까지 인도합니다. 무소부재한 실상은 브라만이지만 지속적 환상의 만연한 원인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조화를 위한 긍정적 토대를 받아들이면, (조화가 다른 어떤 것에 기초할까요?) 미지의 다양한 관념적 공식과 그들 각각이 관념을 넘어선 진리를 나타내고, 최대한 그들의 상호관계와 삶에 미치는 영향을 분리하거나 배타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모든 다른 주장을 파괴하거나 지나치게 축소하지 않을 정도로 이해해야 합니다.

진정한 일원론, 진정한 유일성은 모든 것을 하나의 브라만으로 인정하고, 브라만의 존재를 두 개의 양립하지 않는 존재인 영원한 진리와 영원한 거짓, 브라만과 비브라만, 진아와 비진아, 진정한 자신과 허위, 게다가 영원한 마야로 양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진아만 존재함이 사실이라면 모든 것이 진아인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이 진아, 신 또는 브라만이 무력한 상태가 아니고 한정된 힘이나 제한된 인격이 아니라 자기의식을 가진 모두라면, 그 현신을 위해 모두 안에 드러난 어떤 힘이나 어떤 지혜, 어떤 진리에 대한 가설에서 나아가야 함을 발견하기 위해 어떤 선하고 내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불화와 명백한 악은 그들의 영역에서 인정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정복자로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본능은 영원한 조롱과 환상이 아닌 우주적 발현에 대한 마지막 말씀인 지혜를 언제나 현명하게 찾으며, 모든 것을 만든 무적의 악이 아닌 비밀스러우며 마침내 승리하는 선을 찾고, 영혼의 위대한 모험에서 낙담한 영혼의 후퇴가 아닌 궁극적인 승리와 성취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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