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우리가 더 이완하고 더 똑똑해지니까요. 우리 지혜가 커지고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맹목적으로 살거나 화내고 물질에 집착하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어요. 우리가 이완하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죠. 그게 전부이며 이치가 그래요.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이완할 수 있을까요? 그건 우리 내면에 신의 힘이 있어 우리 영혼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돕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린 전처럼 진지하게 논쟁하지 않고 보다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아오리의 이른바 장기 거주자와 같죠. 그들 중 일부는 전에 밖에서 사업을 했고 일부는 아주 부자여서 이런저런 집에 살았습니다. 지금은 텐트에 살며 또한 만족하고 뭐든지 주는 것을 먹습니다. 그들은 사업을 하러 나가거나 많은 돈을 벌거나 아름다운 옷을 입거나 사장이 되려 하지 않아요. 그런 걸 전혀 원치 않죠. 그들은 전에는 사장이나 매니저였습니다. 그런 모든 걸 버리고 아주 단순한 삶을 살지만 모두 아주 행복해합니다. 그건 그들이 세상을 내려놓고 세속적 욕심이 없기 때문이죠. 그것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좋아요. 물질적인 것으로는 그런 행복을 얻지 못해요.
우리가 영적으로 수행한 후에야 단순한 삶이 소중함을 알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전과 같이 살아도 만족하는 법과 관리하는 법을, 아니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삶은 점점 더 좋아집니다. 비록 전과 같은 돈을 벌더라도 우리는 전보다 더 잘살죠. 그렇죠? (네) 이상하죠. 그렇지 않나요? (이상합니다.) 하지만 이상한 게 아니죠.
왜냐하면 우리가 더 이완하고 더 똑똑해지니까요. 우리 지혜가 커지고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맹목적으로 살거나 화내고 물질에 집착하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어요. 우리가 이완하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죠. 그게 전부이며 이치가 그래요.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이완할 수 있을까요? 그건 우리 내면에 신의 힘이 있어 우리 영혼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돕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린 전처럼 진지하게 논쟁하지 않고 보다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계속 읽죠. 아니면 까비르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하겠죠. 내가 1등이 되려고 자기와 경쟁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좋아요. 계속 읽을게요. 『무성한 풀밭을 다니며 풀을 뜯는 소를 보라, 그 마음은 외양간에 있는 송아지에게 가 있다. 까비르가 말한다. 사랑으로 행하고 똑같이 하라. 삶의 모든 순간마다 신의 이름을 기억하라』
여기서 그는 나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소 주민을 보라고 했습니다. 풀을 뜯고 있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송아지가 사는 곳에 있습니다. 소 주민이 사는 곳을 뭐라고 하죠? 소 주민의 집이 뭐죠? (외양간입니다.) 소 주민의 방요? 외양간? 아, 예. 여전히 외양간에 머무는 송아지를 생각합니다. 풀 때문에 송아지를 잊지 않아요.
그래서 까비르가 말하길, 이처럼 매일 사랑의 마음으로 책임을 다하며 의무를 잘 수행해야 한다. 언제나 책임지는 소 주민처럼요. 숨을 쉴 때조차 신의 은총과 신의 이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명호, 신의 이름을 암송해야 한다는 의미죠. 나는 이미 여러분에게 비밀『보호책』을 말했죠.
그건 비밀은 아니에요. 스승이 거기에 힘을 보내지 않으면 전해줘도 소용이 없죠. 그러니 그 명호를 마음대로 외다가 귀신에 들리기도 합니다. 그렇죠? (네)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암송할까요? 그러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이상하다고 하겠지요. 무엇을 배우던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그것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전기 배선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보면 그것이 아주 쉬워 보입니다. 펜치를 이용해 전선을 자르고 연결하면 끝이죠. 하지만 우리가 자르고 마음대로 전선을 연결하면 감전되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렇죠? (네) 그가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쉬워 보이지만 그는 전문가입니다. 비록 같은 전선이라도 우린 잘하지 못해요. 그렇죠? (네) 고압 전봇대를 예로 들면 때론 전봇대에 올라가 고치는 사람을 봅니다. 우리가 오르면 어떨까요?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린 『포청천』처럼 보이게 구워지겠죠.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내가 말해주는 것은 내가 가르치기 때문이죠. 남들은 가르치지 마세요. 누군가가 요청하면 나에게 와서 배우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래요. 여러분과 다른 이를 보호하려고요. 만약 당신이 전봇대에 오르는 걸 가르치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겠죠.
여기서 그는 여러분 스승과 같은 말을 했어요. 그는 말했죠. 어떤 책임을 맡든, 우리 모두 사랑으로 계속해야 한다고요.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기 책임을 다하면서 여전히 신의 이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 수행의 목적을 잊지 마세요. 그것이 그가 말하는 거죠. 그러므로, 우린 가족을 떠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세상에 관심이 없더라도요. 우리는 세상에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집착하지 않지만 여전히 똑같습니다. 우린 같은 집에 살며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자녀와 남편이나 부인을 돌봅니다. 그렇죠? (네) 그래서 자녀와 남편이 있는 사람이 출가자가 되게 해달라고 조르면 나는 그들을 쫓아버립니다. 그러면 안 되죠! 우린 아무 데서나 수행할 수 있어요.
내가 이미 말했듯이 여기만 나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아닙니다.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나무를 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돈을 벌어서 목재상에 가서 주문하면 됩니다. 여전히 나무를 구하거나 음식을 구할 수 있죠. 단지 조금 더 오래 걸리고 더 긴 여행이 필요해요. 꼭 그리 오래 걸리진 않죠. 내일 나무가 필요하다면 오늘 가게에 전화하세요. 아마 내일이 오기도 전에 나무가 올 겁니다. 꼭 느리진 않아요. 그렇죠?
여기 사는 우리도 같아요. 우리는 더 단순하게 살며 걱정이 더 적을 뿐이죠. 하지만 여러분의 걱정은 자신에게서 오죠. 만약 여러분이 걱정이 많다면 어디에 있든 걱정할 것입니다. 그렇죠? (네) 때론 집에서 남편이나 부인과 다툼이 있습니다. 때론 의견이 다를 수 있어요. 여기도 동료 입문자와 말다툼할 수 있어요. 여러분의 의견이 같지 않을 수 있죠. 여러분의 업을 어디에 가져가느냐에 달려 있죠. 때때로 여러분은 센터에서 지내지만 논쟁하는 마음 같은 많은 걱정을 가져오죠. 진정한 영적 수행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크게 차이가 없어요. 내 말을 이해하나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가 없죠. 우린 외면이 아닌 내면에서 세상을 벗어납니다.
마찬가지로 동료 입문자들은 스승과 함께 영적 수행을 한 후에도 여전히 똑같아요. 그들은 집에 머물며 가족을 돌보면서 책임을 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령 왕이 와서 입문을 받고 왕을 그만두면 누가 왕이 되겠어요? 우리는 모두 영적 수행자로 누구도 왕이 되길 원치 않죠. 그 자신도 그만둔다면 곤란에 처할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내가 남녀 출가자에게 그런 특별한 옷을 더는 입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 옷에 기대어 영적 수행을 하지 마세요. 존경받기 위해 겉모습에 기대지 마세요. 그런 옷 없이도 여전히 사람들이 여러분을 존중하는지 지켜보세요. 수행을 잘하면 사람들이 여전히 존경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인사하지 않을 구실을 찾은 겁니다. 그들이 그런 옷을 입었을 때 사람들은 인사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과 내가 같다고 생각하며 인사하지 않아도 괜찮죠. 우린 청바지나 운동복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영적 수행자는 다른 이의 존경을 받고 사람들이 거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겉모습에 기대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가 이렇게 저렇게 하기에 모두 우리와 함께 고행하며 수행해야 하니까요.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에는 풍조가 그랬습니다. 그 시대의 풍조는 승려가 되어 남루한 옷을 입고 다른 이에게 탁발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다르죠. 특히 대만(포모사)에서는 탁발이 허용되지 않아요.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법을 망치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겠죠.
법을 위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설명이 되죠. 지금 추세는 그렇지 않으니 우린 그렇게 하지 않아요.
영적 수행은 외면이 아닌 내면으로 하는 것이죠. 왜 2,500년 전의 것을 모방해야 하죠?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은 설법을 하러 걸어 다녔습니다. 지금 내가 그렇게 한다면 타이베이로만 걸어가도 많은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렇죠? (네) 나는 지금 해탈시키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구름에서 내려옵니다.
그래야 할 때만 모방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 인도의 그 시대는 달랐습니다. 만약 내가 지금 UN에 강연하러 가는데 남루한 옷을 입고 2주에 딱 한 번 세수를 한다면 괜찮을까요? 어떤가요? (아닙니다) 내가 앉으면 의자를 더럽혔다고 말할 겁니다. 그들에게는 장소를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청소하고 바닥을 닦고 의자를 닦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내가 거기 들어가 의자를 더럽혀야 하죠? 그렇죠? (네) 맨발로 깨끗한 카펫 위를 걸으면 어쩌면 닭 주민 배설물 같은 것이 있는 곳에 들어갔다가 그 후에 아주 아름답고 비싼 바닥과 카펫을 밟을 겁니다.
우리 시대는 다릅니다. 우리는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며 내면을 수양해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를 만들지 않죠. 그렇죠? (네) 전에 내가 승복을 입을 때 어딜 가든 사람들이 보았고 그 시선을 참기 어려웠죠. 지금처럼 입으면 관심을 덜 끌 것입니다. 그렇죠? (네)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전과 다르게 일반인을 보는 것과 같아요. 사람들은 내게 절하려 해요. 공항에서 절을 받으면 꽤나 당혹스럽습니다. 이젠 그냥 눈을 보면 됩니다. 절을 할 필요가 없죠. 내가 이렇게 있으면 내게 절하는 것이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이 줄었죠. 사람들은 『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죠
좋아요. 와! 갑자기 덥네요. 덥지 않나요? 덥죠? (네) 어떻게 핑동 날씨는 이렇게 빨리 변할 수 있죠? 어제는 섭씨 10도였는데 오늘은 이미 30도처럼 느껴지네요. (아침에는 춥습니다) (아침에요) 밤에 춥나요? (오늘 아침에요) 오늘 아침은 아주 추웠죠. 그래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아주 비협조적이네요. 어쩌면 타이베이에서 오는 많은 사람을 보고 가엽게 여겨 말릴 약간의 햇빛을 주는 거죠.
아니라면 타이베이에서 온 사람에게 곰팡이가 피겠죠. 여러분은 오랫동안 스승을 보러 여기 오지 않았어요. 이번 화요일에 여러분과 명상하러 올게요. 나는 여러분이 부지런해서 스승이 없는데도 단체명상에 많은 사람이 참석한다는 것을 압니다. 이삼천 명이요. 아쉬람이 없고 자체 센터가 없어도요. 아직 학기 중이라 더 일찍 올 수도 없죠. 남들이 쫓아내기에 늦게 오지도 못 하고요. 재밌는 일은 아니죠. 그는 내게 이걸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도 울었고요.
모두 여러분이 잘못된 스승을 따르기 때문이죠. 다른 스승으로 바꿔도 돼요. 큰 사원을 가진 스승으로요. 거기엔 지붕이 있을 겁니다. 그럴래요? (아뇨) 여러분과 작별할게요. (아뇨) 어떤 스승은 사원이 있지만 제자들이 없죠. 나는 제자가 있지만 사원이 없으니 바꿔도 괜찮아요. 그들에게 제자를 보내도 좋고 거기가 더 안전하죠. 바람이나 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은 정말 딱해요. 괜찮아요. 하나씩 하죠. 이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영적 수행에 대한 믿음이 있음을 알죠. 여러분이 여기 오기 전에 사원이 멋지게 모두 지어져 있었다면 누가 오지 않겠어요? 게다가 여러분은 꼭 여기 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스승의 시험을 받고 삼사 주 동안 꾸지람을 들으면 도망갈 겁니다. 아마 나를 떠나겠죠.
사람들은 너무 편안하면 편안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타이베이에서 온 사람들은 꽤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아마 스승이 거기서 오래 살았기 때문이죠. 나의 예전 집은 주로 북부에 있었고 타이베이 입문자들은 대부분 오래된 입문자죠. 모르겠네요. 아마 북부의 정신이 더 진지한가 봐요. 거기는 살기가 더 어렵죠. 일로 바쁘므로 다른 곳 사람들보다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요. 그래서 때론 우리가 너무 바쁘더라도 영적 수행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앉아서 명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종일 시간이 많지만 명상하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죠. 그렇죠? (예) 그래요! 때로는 여러분의 장소가 없는 걸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만약 장소가 있다면 꼭 그렇지는 않겠죠. 만약 장소가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겠죠. 『오! 괜찮아, 원할 때 언제든 갈 수 있어,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일요일에』 그러곤 일요일에도 가지 않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에 가도 괜찮아, 왜 안 되겠어?』
핑동 사람들이 오늘 얼마나 많이 왔죠? 5백 명인가요? 가오슝과 핑동에서요. 지금은 더 많이 왔나요? 누구 아는 사람? (11시경에 까오슝과 핑동에서 온 사람들은 5백 명 조금 넘었어요) 봤지요? 앞으로 스승이 핑동에 오지 않더라도 가오슝과 핑동 사람들은 불평하지 마세요. 무시한다고 하지 마세요. 진지하게 하지 않는 거죠. 내가 매일 여기 있는 걸 보고 이틀 동안 단체명상을 하러 오죠. 그리고 일요일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오지 않아요. 알겠어요? 좋아요. 다음번에는 스승을 보러 타이베이로 기어와야 해요.
하지만 그러면 얼마 후에 타이베이 입문자들이 여기 오지 않을 겁니다. 좋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다른 나라를 가도 돼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타이베이는 안 그래요? (네) 지금을 말할 것도 없고 오랫동안 그런 일이 없었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