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차를 타야 했어요. 관광을 하고 싶었거든요. 여러분은 그런 마차를 본 적 없을 텐데 소주민이 끄는 마차였는지 말주민이 끄는 마차였는진 모르겠어요. 밑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는데 윗부분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16~17세기쯤에나 쓰일 법한 마차 같았어요. 뒤에 나무판자가 있었죠. 와, 그걸 탄 후에 엉덩이에 계란만 한 혹이 생겼죠. 정말이에요. 거짓말 아녜요. 거짓말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에요. 와, 진짜 많이 아팠어요. 그곳의 길은 제대로 된 길이 아니었거든요. 길이 곳곳이 파여서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어요. 『덜컹! 덜컹! 덜컹!』 말을 직접 타는 것보다 훨씬 더 안 좋았죠. 난 살도 별로 없었고요. 살집이 없어 무작위로 마사지를 받게 됐어요. 뼈가 있는 곳에 충격이 가해져서 오, 어떻게 됐을까요? 달걀만한 혹이 생겼어요. 이러다 달걀을 낳겠다 싶었죠.
허나 그땐 도를 얻겠다는 열망이 더 강했어요. 만불성이라는 성지로 순례를 갔어요. 전에 절이 많았던 곳이죠. 파간이란 곳이에요. 파간 PAGAN, 파간이요. 수도에서 그곳까지 가는 항공편은 없었어요. 가려면 이동수단을 타야 했죠. 하루에 한 끼만 먹고요. 하루에 한 번만 운행했죠. 새벽 3시에 일어나 거기서 기다리다가 비집고 타야 했어요.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나 갈수 있었죠. 안 그럼 다음날 다시 와야 하니까요. 남편은 키가 크고 몸집이 컸는데도 어렵사리 비집고 탔어요. 그가 한 사람 공간을 차지해서 우리 둘이 앉기에 충분했어요. 작은 아시아인들에 비해 유리했던 거죠. 나중에는 좌석 둘을 확보했는데 달걀처럼 튀어나온 혹 때문에 그리 좋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거기까지 가서 사원들을 방문할 수 있었던 그때는 고생한 보람을 느꼈어요. 지금은 어딜 가든 좋은 차량이 많아요. 중국 본토나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그렇죠. 어울락(베트남)에서의 구호 활동을 봤는데 오! 사치스럽게 차량을 타고 이동하더군요. 그런데도 이런저런 게 어떻다며 불평을 했죠. 차 엔진이 안 좋다 등등요. 우린 미얀마에서 돈이 있었어도 이용하지 못했어요. 우리가 탈 그런 차량은 없었으니까요. 차량이 있더라도 수천 명이 비집고 탔어요. 정말로요. 사람들이 밖에도 매달리고 창문과 지붕에도 매달리고 뒤쪽과 앞쪽에도 매달렸죠. 기사 옆에도 타고요. 기사 왼쪽과 뒤쪽, 앞에까지 타요.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앞을 보고 가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여자든 남자든 상관하지 않고 공간이 있는 한은 다들 계속 비집고 들어왔어요. 근데 그 사람들이 좋았던 건 승려에게는 자리를 양보했다는 거예요. 아무리 비좁아도 승려에게 자리를 내주고 더 비좁게 타죠.
구경한 건 많지 않아요. 허물어진 사찰들과 머리 없는 불상과 귀 없는 아라한상 그리고 손 없는 보살상이었죠. 천수천안을 지닌 관음보살상은 손이 하나도 안 남았더군요. 고고학자나 관광객들이 가져가서 그래요. 손 하나씩을 챙겨간 거죠. 정부는 그런 유물을 엄격하게 관리해요. 불상은 전체를 못 가지고 나와요. 50년이 넘은 건 구입해서 가져올 수 없어요. 50년이 안 된 건 가능하죠. 구입이 가능해요. 하지만 골동품은 돈이 있어도 못 사요. 그런 건 아주 엄격하죠. 그렇게 엄격했지만 다들 떠날 때 손을 하나씩 챙겼던 거죠. 손을 집에 가져가 거실에 두고 장식품으로 썼겠죠.
정부에선 왜 거래를 허용하지 않았을까요? 서양인들이 유물을 화장실에 놓거나 욕실에 놓을까 싶어서죠. 장식용으로요. 미얀마 사람들은 그런 유물을 매우 존중해요. 서양인 관광객들은 그걸 이해 못 하고 이러죠. 『불상 전체를 못 가져가면 손이라도 가져가야겠다』 그래서 전시회에 나온 전시 품목을 보면 때로는 골동품 전시장에 불법 유물이 많은 거예요. 아주 비싸고요. 조각상의 반만 남았고 나머진 훼손된 경우도 있죠. 그런 거 본 적 있나요? 전시하려고 가져온 건데 비싼 가격에 팔리죠. 아니면 머리나 손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식이었어요. 미얀마에서 온 건데 왜 머리만 있을까요? 몰래 가져왔기 때문이죠.
때론 고고학자들도 가요. 파내는 건 괜찮아요. 발굴한 유물은 국가나 국제 사회에 귀속되니까요. 아무도 못 가져가죠. 하지만 법을 어기고 몰래 집으로 가져가서 팔곤 해요. 나중에 싫증이 나면요. 아니면 장식품으로 쓰죠. 때론 욕실과 화장실에 장식품으로 놓거나 문 옆에 문을 지키는 신으로 놔두죠. 미얀마나 태국 사람들은 부처님을 크게 존경해요. 불상이 곧 부처님이라고 믿죠. 그래서 그런 짓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걸 알면 슬퍼하죠. 그 결과 그 후로 그들은 불상의 해외 판매를 엄격히 금했어요. 불상은 팔 수 없게 됐죠.
하지만 나중에 나는 나만한 불상을 두 점 어렵사리 샀죠. 한데 그걸 구입하기 위해 태국으로 가야 했고 행정 절차를 많이 거치며 큰돈을 써야 했어요. 새로 만든 불상이었어요. 오래된 건 구할 수 없었죠. 하지만 새 불상에도 난 만족했어요. 골동품을 사려던 건 아니었죠. 그땐 아주 독실해서 불상을 구한 것만으로도 무척 기뻤어요. 게다가 동시에 두 개를요. 정말 운이 좋았죠! 난 정말 기뻤어요. 다만 바로 해외로 가져갈 수는 없었고 판매자를 믿고 지불을 한 뒤 불상을 맡겨야 했어요. 언제 배송이 될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동안 관음보살님에게 기도할 뿐이었죠. 나중에 물품이 도착했어요. 새 불상이었지만 빈티지 처리를 해서 오래된 것처럼 보였어요. 게다가 꽤 근사했어요.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죠? 그래요. 거기에 가서 머리도, 손도 없는 망가진 불상을 봤다고 했죠. 가느라 고생을 했고요. 지금 가서 멀쩡한 걸 보면 어떨까요? 그때는 누구도 날 꾸짖거나 때리지 않았어요. 근데 웬일인지 얻어맞은 느낌이었죠. 여기저기에 상처도 났어요. 오, 온몸이 욱신거렸어요. 그리고 거기까지 마차를 타고 가야 했어요. 마차를 탈 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말주민들이 고통스럽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요. 햇볕이 무척 따가웠죠. 사람들도 걷기 힘든데 말주민은 우릴 태우고 가야만 했어요. 그들은 돈을 벌려고 작은 마차에 열 사람도 넘게 태웠죠. 말주민은 계속 달리고 또 달려야 했어요. 채찍을 맞으면서요. 내 눈에 비친 이 세상은 정말 고통스러운 곳이었어요. 그걸 보며 편치는 않았지만 그냥 앉아 있었어요. 어쩔 도리가 없었으니까요. 마음이 정말 안 좋아서 울음이 나올 뻔했어요. 하지만 내가 마차를 안 타면 주인은 돈을 못 벌 테고 그럼 말주민들은 굶주렸을 거예요. 어느 쪽이든 안 좋죠. 다른 탈것도 없었고요. 어느 쪽이든 편치 않았죠.
가는 길은 오래 걸렸어요. 걸어서 가기에는 불편했어요. 시간은 한 주밖에 없었고요. 걸어서 갔다면 거기까지 두 주는 걸렸을 거예요. 역에서 만불성까지는 걸어서 두 주 정도 걸려요. 그래서 불평할 처지도 아니었죠. 그러니까 난 잘 걷지도 못하는데 땡볕이었고, 한 주 동안 먹지도 못했다는 거죠. 한두 번 식사를 하긴 했지만 먹은 게 거의 없었어요. 토스트를 먹은 게 전부였죠. 난 청결한 곳에서만 먹을 수 있었어요. 비건 음식이어야 했고요. 비건 음식을 어디서 찾죠? 미얀마에는 불교 신자도 많고 승려들이 많으니 비건 음식이 있을 거라고 여기겠지만 아니었어요. 내가 갔던 사찰마다 사람들은 닭주민 다리를 뜯고 있었어요. 오, 정말 크더군요. 돼지주민이나 다른 고기도 있고요. 돼지주민과 닭주민의 다리가 함께 있었어요.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운데 먹는 건 말할 것도 없죠. 정말 그랬어요. 그래서 한 주 내내 거의 먹질 못했고, 내 몸은 이미 많이 약해져 있었어요. 또 당시엔 견디지 못할 정도로 더웠어요. 태양이 이글거렸고 난 아팠어요. 아파서 토했어요. 속이 불편하고 약해져서 잘 걷지를 못했어요. 모든 게 불편했고 안 좋았어요.
그런 여건 속에서도 어렵사리 머리 없는 불완전한 불상들을 보고 왔고 난 정말 기뻤어요. 그래요. 그런 것도 고통이고 괴로움이라 할 수 있죠. 이따금 목불상을 보러 갈 때도 그런 걸 겪어야 하는데 생불을 만나려고 한다면 말할 것도 없겠죠. 물론 때론 정신적인 괴로움을 겪기도 하죠. 또 업이 닥치면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죠. 사실, 다 허상이에요. 하찮은 것이고 별거 아녜요. 육신과 마음만 괴로울 뿐 영혼은 그렇지 않아요. 영혼은 고통받지 않죠. 때론 작은 고통에 영혼이 정화되기도 하죠. 압박을 좀 받는 건 사실 좋은 거예요. 때론 압박 하에서 일하기도 하잖아요. 명상을 더 하려 할 때마다 일을 하러 가야 하거나 시간이 부족해지죠. 그럼 괴롭힘을 당하거나 강요당하는 느낌을 받는데 사실은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명상이 잘 되죠. 매일 편안하게 즐거움을 누리며 하고 싶을 때만 명상을 한다면 명상을 잘할 수 없을 거예요.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안거를 한다거나 그런 것에 너무 환상을 갖지 마세요. 그건 망상이에요.
그래요! 가령, 내가 해준 이야기가 있죠. 말주민을 타던 사람이… 물을 돌리는 바퀴가 있는데 알아요? 수차요. (수차요) 수차. 수차는 늘 돌아요. 그렇게 물을 얻죠. 맞죠? (네) 옛날에는 그런 수차를 썼어요. 그렇게 해서 물을 집으로 보내거나 필요한 곳으로 보냈죠. 말주민을 탄 사람이 말주민에게 물을 먹이려고 했어요. 하지만 가까이 가던 말주민이 『덜컹』거리는 수차의 소리를 듣고 무서워서 달아났어요.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았죠. 그래서 말주민의 주인은 수차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잠깐만 수차를 멈춰달라고 했어요. 자신의 말주민이 소리에 겁먹지 않고 물을 마시고 갈 수 있도록요. 하지만 수차가 멈추자 물이 안 나왔죠. 그래서 말주민이 물을 마실 수 없었어요. 주인은 말했죠. 『좋아요. 수차를 다시 돌리세요』 수차가 다시 움직이자 말주민은 또 달아났어요. 수차를 관리하는 남자는 이렇게 말했죠. 『말주민이 억지로라도 물을 마시게 하세요. 수차 소리가 멈추면 물도 안 나오니까요. 지금 마시게 하든지 아니면 관두세요』 그런 식이에요.
명상할 시간이 없을 때만 명상이 더 하고 싶어지죠. 삶이 너무 안락하면 천국에서 사는 것 같죠. 천상계에서는 수행하기가 어려워요. 영적 수행을 할 목표나 동기가 없으니까요. 간절하고 허기가 느껴져야만 음식이 맛있죠. 너무 풍족하면 부자들 같은 문제가 생기죠. 음식을 못 즐기고 다 먹지도 못하죠. 옛날 왕이나 고위 대관들은 식욕이 없었다고 하죠. 모임에서만 먹었고요. 왕들은 종종 식욕이 없죠. 내가 지금 그런 식이에요. 『부자들 병』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요. 먹을 게 너무 많아서요. 사람들이 내게 공양한 것을 여러분에게 나눠줄 때도 마음속으로는 언제든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죠. 그래서 내가 요구하지 않는 거죠. 근데 예전에는 뭘 먹어도 맛있었어요. 처음 출가를 했을 때나 구도의 길에 나섰을 땐 돈이 없었어요. 오, 비건 초콜릿 한 조각도 정말 귀하게 여겨졌죠.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요! 그런 게 생기면 바로 나눠주죠. 바로바로 나눠줘요. 쳐다보기도 힘든데 먹는 건 말할 것도 없죠. 정말로 그래요.
인도에 있었을 때는, 이따금 한 주 내내 비건 과자 생각이 간절해지곤 했죠. 난 돈을 전부 공양했거든요. 그곳 주지스님이나 주지스님의 스승님에게요. 어딜 가든 깨달은 스승이 계시면 바로 돈을 공양했어요. 내 육신은 생각도 안 하고요. 아직 부처가 안 됐을 때니까요. 내 육신은 늘 시끄럽게 했어요. 하루는 비건 초콜릿을 달라고 했어요. 내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요. 다음날엔 인도의 라두를 달라고 했고 비건 바피도 원했죠. 네? (비건 키르요) 비건 키르. 내가 전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했죠. 꾸짖어도 소용없었죠.
근데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때로는 여러분과 식사를 해도 사실은 식욕이 없어요. 먹을 순 있지만 습관적으로 먹을 뿐이고 단지 육신에 영양을 주고 돌보기 위해서죠. 그래도 몸은 작동해요. 안 그럼 먹고 싶지 않아요. 먹는 걸 즐길 때는 참 드물죠. 한 주에 한 번 정도일까? 한 달에 한 번 정도죠. 두세 달에 한 번이나요. 정말로 음식을 즐기는 건 하루뿐이에요. 그럴 때도 전과는 달라요.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먹을 게 있으면 다 먹었고 모든 게 다 맛있었어요. 정말로 그때는 뭐든지 먹을 수 있었죠. 요즘엔 지금처럼 보기에는 차를 마시고 뭘 먹긴 해도 음미하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자면요. 그냥 여러분과 더불어 먹을 뿐이죠. 아무 맛이 안 나도 괜찮아요.
사진: 각 존재는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