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백색 형제단의 영적 기원은 불가리아의 페테르 콘스탄티노프 되노프로도 알려진 베인사 도너 스승이 설립한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겸손과 순종, 정직, 선함, 지성, 고결함이 영적 수행에 선행되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사랑, 지혜,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주 백색 형제단은 신이 돌이나 식물, 물, 공기, 동물, 빛 등 모든 것 속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불살생 즉 비폭력의 원칙을 따르던 베인사 도너 스승은 채식을 실천하고 권장했습니다. 스승은 또한 많은 영적 노래와 작곡을 한 정통한 음악가이자 작곡가입니다,
오늘은 우주 백색 형제단의 신성한 가르침: 베인사 도너 스승의 강연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어려움 속에서 더 높은 경지로 영혼을 맞추며 음악을 만드는 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성경 요한복음 20장 19절
영생~ 이는 인간 영혼의 염원입니다. 이 이상에 도달하려 항상 노력하고 성취하길 열망하지요. 인간의 영혼은 영생의 길을 발견하기 위해 지구에서 살아갑니다. 영생은 위대한 신의 법에 규제를 받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배우고 삶의 모든 면에 적용해야 하는 법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영생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지요. 인간은 영원할 수도, 영생을 잃을 수도 있고, 죽게 될 수도, 영생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과 영생~ 이것은 두 가지의 상태입니다.
더 과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영생은 자연 안에 활동하는 힘, 즉 모든 것들의 평형상태입니다. 죽음은 이 평형상태의 상실입니다. 영생은 그 안에 합일과 조화를 내포합니다. 죽음은 불일치와 불화 부조화를 내포합니다. 사람들이 영생을 원할 때에는 그것이 무엇을 내포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콘서트 홀에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들으러 간다면 만약 관찰능력이 있다면 이러한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먼저 연주자들이 대개 현으로 된 악기를 가지고 들어올 때에 악기를 케이스에서 꺼낸 후에 현의 음색을 정하기 위해 바이올린을 조율하기 시작할 때에 어떤 것들은 더 팽팽하거나 덜 팽팽하지요. 이 조율에는 특정 비율이 있습니다.
악기들을 특정 음색에 따라 조율한 후에는 인사를 하고 연주를 시작합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자기 악기를 조절하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합류할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는 지 아세요? 적어도 12년간 특별훈련에 바쳐야 합니다.
이 악기에는 상징이 있습니다. 아마 바이올린을 가장 완벽한 악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위대한 거장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들어 낸 이래로 거의 완벽해서 지난 3백 년간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이올린을 영혼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4개의 현과 1개의 활이 있죠. 바이올린은 영혼이며 네 개의 현들, 이는 인간의 네 가지 기질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활로 간주할 수 있어요. 연주자는 현을 사러 가서 말할 것입니다.
『내게 이런저런 현을 주십시오 미(E), 라(A), 레(D)나 솔(G)』 집에 돌아오면 그는 모든 현을 어떤 자리에 놓아야 하는지 알지요. 인간의 본성 중에는 4가지의 기질이 있습니다. 분노, 냉담, 낙천, 긴장이 있죠. 이들이 인간에 내포된 4가지 기질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 마음, 삶과 서로 상호작용합니다. 이들이 우리가 당기고 푸는 법을 알아야 하는 4개의 주요한 현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조율할 때에는 이들을 하나로 맞추고 같은 음으로 맞추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바이올린에서는 네 개의 현이 네 가지 다른 음조로 조정되며 현 사이엔 4개의 음색이 있어요. 즉 뒤따르는 모든 현이 이전 현보다 4음조씩 더 높다는 것입니다. 바이올린을 조율할 때에는 4x4=16개의 음조, 단계에 따라 현이 조율됩니다.
바이올린은 특히 교차해서 연주하는 유일한 악기이며 가장 즐거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악기이지요. 그 음조는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바이올린을 조율하고 십자가 모양으로 활을 들고 이제는 불평합니다.
『신이여, 어째서 저희에게 이 무거운 십자가를 주셨나요!』 신은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악기를 주었지만 여러분은 그것을 조율할 줄을 몰랐고 이 때문에 여러분 등에 무거운 짐이 된 겁니다. 그걸 내려놓고 조율하기 시작하세요. 음을 낼 수 있도록요.
그리고 사도 바울이 자신은 십자가 안에서 자랑할 것이라 했을 때 뭘 이해했습니까? 사방에 이런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보여요. 교회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보이지만 십자가를 연주하는 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콘서트 홀에 들어서면 자신들도 십자가 고통을 지닌 것을 잊은 채로 자신도 연주를 함을 잊은 채로 박수를 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를 지키는 겁니다. 지휘자가 봉을 들고 지휘하기 시작할 때 모든 이가 주의를 기울이고 지휘자를 따라야 합니다.
이 활들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특정한 기쁨을 안겨줍니다. 이 활들의 움직임이 특정한 규칙을 따르죠. 그러니 삶의 깊은 본질적 의미로 보면 우리가 현들 -정신, 마음, 영혼, 삶을 조율할 때 그리고 우리가 활 -즉 지휘자의 영혼을 통해 일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발휘할 때 지휘자는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을 만들 것입니다.
십자가는 주께서 지구에 있는 우리를 방문할 때 내리시는 위대한 축복입니다. 가장 장대한 심포니가 구원이라 불리는 음악, 노래로부터 생겨납니다. 이것을 그 구원의 노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셨을 때 저 위의 천국에서 천사들은 울지 않고 노래했습니다. 지옥의 모든 죄수들은 구세주의 오심에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구에 나셨을 때 다시 천사들이 노래하며 그의 도착을 알렸습니다. 그러니 이 악기들, 이 현들과 우리 믿음의 활이 창조되었을 때 천사들은 천상에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말합니다. 『고통이다! 지구는 고통 덩어리고 삶은 짐이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알지 못하고 연주하길 원하지 않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그들의 현을 당길 줄 모르는 이들,즉 지휘자에게 귀 기울일 줄 모르는 이들에게 삶은 진정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바이올린을 맞추고 연주할 줄 알면 삶은 큰 의미를 갖지요. 그리스도는 자주 와서 연주하는 방법을 아는지 물으십니다. 내가 인간에게 『고통 받는 법을 아십니까?』 물을 때 연주하는 법을 아는지 묻는 것입니다. 고통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은 연주하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자는 악한 생각이 없다. 고통 받는 자는 노래하고 연주하며 자신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연주하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굶주립니까? 알지 못하면 누구라도 구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연주하려 어딘가에 서 있는 자는 사람들로부터 대가를 받습니다. 고통 받을 줄 아는 사람은 절대 굶지 않을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은 고통 받는 이를 도우려 합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처럼요. 누가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을 때 다른 이들은 활의 움직임만을 보지만 나는 연주자의 소리를 듣고 그가 이미 배웠는지 혹은 지금 배우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배우는 중이라면 그는 풋내기로, 지금 배우는 거지요.
그러나 12년이 지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다면,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비싼 표 값을 지불합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노래하고 연주하는 법 혹은 기독교적으로 말해 고통 받는 법, 이 위대한 법을 배울 때 이 단어들은 나에게 같은 뜻입니다. 고통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법, 영생에 도달할 것입니다.
모든 조화가 공존하는 곳, 부조화란 내재하지 않는 곳, 지구에 오는 예수님은 노래하고 연주하는 법을 가르치러 옵니다. 여러분에게 영혼의 현을 당기는 법을 가르칠 것입니다. 신께서는 우리의 성장을 위해 고통이란 이 법칙들을 통해 행하십니다. 느끼고 생각하려면 노래하고 연주해야 해요.
생각은 연주, 느낌은 노래하는 겁니다. 이제 이렇게 말하겠죠. 『이것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오늘날의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질문에 숙고하며 말합니다. 『내가 천국에 가면 모든 것을 배울 겁니다』 이것은 세상 너머에 있죠. 이 세상에서는 뭘 해야 할까요?
여기서 사람들의 불합리가 드러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린 매우 영리하지만 초월한 다른 세상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청년이 어떤 대학에서 공부하길 바랄 때 집에서 바로 대학으로 들어 갈수 있나요? 먼저 유치원을 거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고등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준비해야만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