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왜 신께서 우리를 지구에 보냈으며 지구는 무엇일까요?
여기는 우리가 통과해야만 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졸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다른 세계로 들어갈 때 그들이 그 학급에 우리를 받아줄까요?
결코 아니죠. 『부활』 이란 말은 본래 고상한 이상을 담죠. 신의 비밀이 있어요. 부활한다는 것은 모든 물질과 권력과 생각과 욕구와 행동의 주인이 된다는 걸 의미해요. 그러니 이 모든 것들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부활할까요?
개구리나 작은 뱀을 보고 놀라면 부활하기 위해 여러분은 어떻게 준비할 건가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슬픔마저도 견딜 수 없고 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부활할 수 있겠습니까?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기 위해 하루에 1~10시간 노력해 12년이 걸린다면 우리 기독교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배우려면 얼마나 연주해야 할까요?
신께서 우리에게 바이올린과 줄, 활을 선물로서 주시고 교사를 찾아 돈까지 지불해줄 순 있겠지만 연주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하루에 10시간을 연습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너희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의 폭 넓은 의미를 설명해 보면 지휘자가 교향곡 아리아를 선택하고 지휘봉으로 신호하면 모든 사람이 동시에 듣고서 연주를 시작하는 것과 같아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너희와 평화가 함께 하기를!』 했을 때 모두 자신의 바이올린과 활을 준비하고 세상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신의 멜로디를 경청해야 합니다. 모두가 주님 앞에서 노래하고 연주합니다.
신은 지켜봅니다. 노래를 못 배웠고 울리는 사람 모두를요. 우는 것은 일그러진 노래입니다. 웃을 때는 입이 약간 위로 올라가고 울 때는 밑으로 처집니다. 우는 사람은 어려서 아직 노래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 우는 건 일그러진 노래이면서 더해서 훌륭한 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때가 되면 훌륭한 노래로 바뀔 것이니 우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겐 고통스럽지요. 그도 노래를 배울 테니 우리는 관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부활로 세상에 이 새 에너지를 가져왔으며 구원이라는 그 신성한 예술을 보여주셨죠. 이게 바로 복음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죠.
여러분은 말하죠. 『난 이걸 몰라. 난 저걸 몰라. 이건 필요하고 저건 필요 없고, 이건 옳고 저건 옳지 않아』 무엇이 옳죠? 하고 물으면 어떤 이들은 고통 받거나 노래하고 싶지 않고 일하고 싶지 않다고 하죠. 그렇다면 뭘 원할까요?
울음은 연습이고 노래로의 전환기죠. 괭이도 음색이 있어요. 괭이를 들어올려 괭이질하며 일하는 것은 드럼을 치는 것과 같아요. 드럼은 두들겨야 소리가 나니까요. 도끼를 들어서 내려 찍는다면 음악에서 벨 소리와 같습니다.
그리고 괭이를 들어올려 땅을 간다면 『스승께서 보고 계셔, 이 괭이를 리듬에 맞춰 사용하는 법을 알아야 해』 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일해야 합니다. 나무를 자르세요. 예술의 기법에 맞춰 자르세요.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무의미해요』 라고 말합니다. 그럼 삶에서 뭐가 의미 있나요? 겉보기에 가장 작고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것에 가장 위대한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부활은 신의 성령이 우리 삶 속에서 연주하는 과정이며 신께서 그 근본적인 조화를 통해 소생시키는 위대한 과정입니다.
언젠가 여러분의 귀가 열리면 지금보다 더 많이 더 멀리까지 듣게 될 겁니다. 전 우주에 샘, 나무, 잎 같은 물체들이 발산하는 특정한 음조의 움직임이 있음을 알게 되고 세상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퍼져 나가는 장엄한 (내면의 천국의) 음악을 듣게 되는데 그럼 삶의 내적 의미를 이해할 겁니다.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이 콘서트 홀을 소개하고 싶은 겁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표를 사주겠지만 여러분이 홀에 들어가 콘서트와 공연을 본다 한들 이 신성한 음악을 이해할 귀가 있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깊은 의미입니다. 이것이 높고 낮은 등급의 모든 천사들간에 나타나는 삶입니다. 이 신의 화현은 세상의 모든 곳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내적인 연결을 찾지 못해 다양한 현상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거죠.
『평화가 함께 하길』 이 말이 들리면 우리는 노래할지, 혹은 울어야 할지, 지휘자의 지시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죠. 『그대는 북 치는 법을 배우지 않았고 곡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한다. 그대는 음성을 가다듬지 않았으며 그대 삶과 영혼의 현을 조율하지 않았다』
『평화가 함께 하길』 주는 다시 말씀하시고 여러분은 연주합니다. 『잠깐! 그대는 바이올린에 손가락을 제대로 올려 놓지 않았다』 신이 연주를 멈추게 하면 이렇게 말하겠죠 『이젠 질렸어!』 하지만 여러분은 기교란 대단한 인내와 집중을 통해 습득할 수 있으며 게으른 자는 천국을 얻지 못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처럼 배우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어린아이는 열심히 배우지만 어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이런 저런 걸 배울 필요가 없어』 그리고는 마침내 물음표처럼 몸을 웅크리면 땅이 그들을 끌어당기고 그들은 땅에 묻힙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바이올린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내려 놓고 다시 새롭게 만들라』 다시 조립하면 새로워 질 것이며 다시 배울 겁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법을 배우길 원하십니다. 그는 배우길 싫어하는 아이들이 천국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 번째 천국에 올라갔을 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걸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노래와 연주를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노래와 연주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근본적인 선율이 뭔지 압니까? 자신의 바이올린을 조율할 줄 압니까? 조율법을 배우세요.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신경계를 조율하세요. 심술 나고 불안하면 바이올린이 조율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멈추고, 조율하세요. 천천히 조율하면 여러분의 염려는 사라질 것입니다.
어떻게 신경계를 조율할까요? 여러분은 기도해야 하며 그것이 조율입니다.
왜? 기도해야 하죠? 자신의 바이올린을 조율하기 위해서죠. 이렇게 바이올린을 조율하고 나면 주님께 말할 겁니다. 『제 바이올린이 조율 됐습니다』 그럼 주께선 말씀하시죠. 『일과를 시작하라』 그러면 평화가 임할 것이며 일이 순조롭게 될 것입니다.
아내가 바이올린을 잘 조율하지 않았다면 물론 그 날은 음악이 잘 되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말하죠 『왜 신은 내게 이런 얘들을 주셨을까? 너무 버릇이 없어!』 자녀들이 잘못 행동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머니의 잘못일까요?
다른 날 바이올린이 조율되면 자녀들은 변한 게 없지만,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그러니 불협화음이 있는 거죠. 그래서 아침에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기도하는 것~
우리의 두뇌와 마음, 영혼, 삶을 조율하고 일하기 위해 주님 앞에 나타나는 거죠. 감사하며 이렇게 말하죠. 『우리는 오늘 노래하고 연주하며 교훈을 잘 배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감사할 겁니다』
그리스도는 지상에서 우리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걸 보러 오셨습니다.
기독교는 신의 음악이며 신의 노래입니다. 노래와 연주법을 배워요. 바이올린을 잘 조율하고 활을 정확히 놓고 지휘자의 지시를 들으세요. 온 세상은 이 신의 법을 따를 것이며 여러분은 다가오는 다른 세상을 위해 다른 삶을 위해 준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