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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다스리고 가장 안전한 깨달음의 법문을 선택하라, 6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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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준 까비르‍ 이야기 기억해요? 그는 집에 찾아온‍ 구도자들에게 줄‍ 음식을 얻기 위해‍ 이웃의 식료품점‍ 주인에게 아내를‍ 데려다줬어요. 그는 돈이 많지 않았어요. 노동을 해서‍ 생계를 유지했어요. 돈을 많이 벌지 못했죠. 그래서 당시‍ 지혜를 얻으려고‍ 그에게 몰려온‍ 구도자들에게 줄‍ 음식을 살 돈도 없었어요. 아마 입문식이었겠죠. 그래서 아내는 이웃집에‍ 밀가루를 빌리러 가서‍ 나중에 돈이 생기면‍ 갚겠다고 했는데 주인은‍ 다른 걸 원했습니다. 그녀는 그와 하룻밤을 보내면 그날‍ 원했던 걸 얻을 수‍ 있었지만 물론‍ 받아들이지 않았죠. 그녀는 집에 가서‍ 남편에게 말했어요.

그러자 아내와 내내‍ 육체적 순결을 지켜왔고‍ 금욕을 해오며‍ 금욕을 옹호했던 그녀의 남편, 성자 까비르는‍ 아내를 직접‍ 식료품점 주인에게‍ 데려다주며 말했어요. 『그녀를 데려왔소.‍ 그녀와 즐기고‍ 내게 식료품을 주시오』‍ 여러분 중 몇몇이 물었죠. 『성인이 왜 그랬을까요? 그의 설법과 모순되지‍ 않나요?』‍ 누가 알아요? 말해보세요. 그동안 여러분은‍ 내 말을 들었으니 이젠‍ 여러분 말을 듣고 싶어요. 누가 말해보겠어요? 예쁜 컵을 줄게요. 좋죠? 아니면 부채는요? 누구 있어요? 까비르는 왜 그랬을까요? ‍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자신을 포함해‍ 모든 걸 희생한 것입니다)‍ 그래요. 다음 사람, 다른 사람은요? (무조건적인 사랑과‍ 사심 없는 마음, 무아의‍ 헌신을 한 겁니다)‍ 아주 좋아요. 어떡하죠? 하나밖에…‍ 이 부채가 멋진가요? 어느 거요? 네, 개의치 마세요. 두 사람에게 다 줄게요. 난 다음에 다른 걸‍ 가지면 돼요. 거기 두 사람이요. 두 사람 다요. 훌륭해요! 아주 좋아요. 그래서 노트에 적어놨죠. 여러분, 일부가 이런 의문을‍ 가진 걸 알기 때문이죠. 여기 적어놨어요. 『잊지 말고 설명해줄 것』‍ 여기에 다른 메모를‍ 써 놔서 잊어버릴지도‍ 몰라서요. 『추가로 설명할 것』‍

까비르는 영적 구도자인‍ 손님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얻는 대가로‍ 아내를 이웃에게 보냈죠. 그 자신은 금욕해도‍ 그 일로 그가 부도덕하게‍ 될까요? 그가 금욕했단‍ 걸 어떻게 알까요? 그의 가르침에 나와‍ 있기 때문이죠. 누가 그에게 전에 왜‍ 결혼을 했는지 물었어요. 물론 그는 그동안‍ 아내와 관계를 했고‍ 나중에 그만뒀죠. 그는 『내가 못 깨달았었기‍ 때문이오』라 했죠. 그러니 이제 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들은 친구처럼 지냈죠.

많은 성인이 그렇지요. 자녀를 갖기 위해서만‍ 육체적인 관계를 하죠. 이미 말해준 거죠. 그러니 사실 스승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하죠. 그러니 희생과 같은 거죠. 그렇게 보이진 않아도요. 이기적이거나 욕구를 채우고‍ 무지한 방식으로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감각적‍ 쾌락을 이용하는 게 아니죠. 그게 깨달은 존재들과‍ 무지한 이들 간의‍ 큰 차이예요. 하지만 모든 스승이‍ 이런 종류의 희생을‍ 하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기꺼이 그러진 않죠.

한 스승이 있었어요. 아마 티베트 같은 곳의‍ 스승일 거예요. 한 번은 후원자의 딸이‍ 그에게 음식을 가져왔는데‍ 그가 그녀와 육체적‍ 관계를 맺길 원했어요. 그러자 그녀가 울며‍ 집으로 뛰어가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어머니는 딸을 다시‍ 데리고 가서 말했어요. 『죄송합니다. 제 딸이 너무 무지해서요.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염려 마세요. 이미 말해 두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시면 그리하세요』‍

그러자 스승은 거절하며‍ 말했죠. 『됐다, 너무 늦었다. 이젠 필요 없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악도에 떨어져‍ 나쁜 동물의 몸을 입고‍ 태어나려고 하는 걸‍ 봤기 때문에 그가‍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돕고 싶었을 뿐이다. 그럼 내가 그를 계속‍ 도울 수 있으니 말이다. 근데 그녀가 도망쳤으니‍ 너무 늦었다. 그는 이미 가버렸다. 이미 동물로 잉태됐지.‍ 그러니 이젠 필요 없다. 하지만 고맙구나』‍

모든 스승이 이러진 않죠. 스승이 다 그러진 않아요. 아주 아주 드물죠. 그렇게 다 주는 스승은‍ 매우 드물어요. 아마 스승이 몰랐겠죠. 혹은 알았다 해도‍ 원치 않았겠죠.

많은 스승들이 제자를‍ 가르치길 원치 않거나‍ 오랫동안 지켜본 뒤에‍ 소수의 제자만을‍ 골라서 가르쳐요. 그들이 와서‍ 스승을 위해 일하고‍ 노동하며 공덕을 쌓으면‍ 스승은 누가 더‍ 진정한 것, 진정한 입문을‍ 받을 잠재력이 있는지를‍ 지켜봅니다. 혜능 대사의 사례를‍ 볼 수 있죠. 달마 대사 이후‍ 선종의 5대 조사인‍ 홍인 대사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어요. 부유하고 이름 있고 권세‍ 있는 이들과 평민들, 승려들이 그에게 와서‍ 출가를 했지만‍ 그는 사실 별로 많은 걸‍ 가르치지 않았어요. 아마 그냥‍ 부처의 명호를 외고‍ 불상에 절하고‍ 아침과 저녁 예불을‍ 드리는 것 정도였죠. 귀신들과 일체중생을 위해‍ 아침, 저녁 예불을 드리며‍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는 거죠.

누가 그의 계승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보기 위해‍ 그는 시험을 봤어요. 소위 그의 출가 제자들‍ 가운데 수제자가‍ 몇 구절을 적었죠. 그런 글은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평범하고 고전적이고‍ 아주 안전했죠. 안전한 사행시였어요. 혜능이 나올 때까지는요. 그는 다른 걸 적었어요. 그는 중국어를 쓰고‍ 읽는 법을 몰랐어요. 당시 어울락(베트남)‍ 출신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글을 썼는데‍ 다른 모든 제자들이‍ 상상하거나 떠올릴 수‍ 있는 그 어떤 글보다도‍ 더 뛰어났어요.

그는 글을 쓴 게 아니에요. 정말 그걸 깨달았던 거죠. 그는 이미 크게‍ 깨달은 상태였어요. 스승에게 오기 전부터‍ 이미 깨달았던 거죠. 하지만 물론‍ 이 스승이 그에게‍ 공식적으로 법을‍ 전수해준 후 그의‍ 깨달음은 완전 해졌죠. 그리해서 여러분이 그가‍ 쓴 글을 볼 수 있는 거죠. 난 금강경에 대해‍ 설명하려는 게 아니니‍ 그건 건너뛸게요. 다만 그의 글은 내면의‍ 깨달음을 반영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홍인 대사가‍ 달마 대사 때부터‍ 계승자에게 전해진‍ 자신의 가사, 옷과‍ 탁발 그릇 (의발)을‍ 그에게 전한 거예요.

의발은 계승자를‍ 상징하는 거죠. 별로 비싼 것도 아니에요. 그저 평범한 승복과‍ 승려들이 쓰는‍ 평범한 발우였어요. 귀한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것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그 후에 누군가‍ 혜능의 뒤를 추격했어요. 그를 죽이고‍ 그 의발을 가지려고 했죠. 많은 사람들이‍ 그 의발을 가지려고‍ 그를 죽이거나‍ 해치려고 했어요. 값비싼 것이어서가 아녜요. 그것이 스승이 됐다는, 스승의 계승자가 됐다는‍ 상징이기 때문이죠.

어떤 어울락(베트남)인이‍ 온 지 얼마 안 되어‍ 당시 중국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지고 떠났을 때‍ 그들은 극히 적의를 품었죠. ‍

제자를 입문 시키려는‍ 스승들도 많지 않아요. 밀라레빠는‍ 아주 오랜 기간 일하면서‍ 많이 얻어맞고 야단을‍ 맞아야 했어요. 그래서 그는‍ 다른 지역에 있는‍ 요즘의 관음사자 같은‍ 입문한 수제자를 찾아가‍ 몰래 입문을 받으려고까지‍ 했는데 효과가 없었어요. 체험이 전혀 없었죠. (내면 천국의) 빛도 없고‍ (내면 천국의) 소리도‍ 없었죠. 마르빠 스승이‍ 허락한 게 아니니까요. 입문을 주는 건‍ 수제자가 아니에요. 입문을 주는 건 스승이죠. 스승이 거기에 없어도요. 마치 여러분이 여기서‍ 입문할 때 처럼요. 내가 그곳에 없어도‍ 여러분은 체험을 하죠.

즉 옛날에는 많은 제자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스승이 많지 않았단 거예요. 신도들이 많은 건 괜찮죠. 오갈 수 있고‍ 사원을 청소하고 불단을‍ 수리하고 법회를 위해‍ 요리를 하는 등, 온갖 일로‍ 공덕을 쌓는 이들이죠. 하지만 제자는 아니에요.

입문을 시킨다는 것은‍ 무수한 전생에서‍ 아주 오랜 영겁의‍ 세월 동안 그 사람이‍ 지은 모든 업을‍ 짊어진다는 뜻이니까요. 한 사람의 업만으로도‍ 온 하늘을 덮는다고 했죠. 부처가 그렇게 말했죠. 하물며 그 가족, 친구, 사랑하는 이들, 아내, 선대, 후대, 5대, 6대, 7대, 8대, 9대는‍ 말할 것도 없죠. 모든 스승이 기꺼이‍ 고통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걸 감당할 만큼 충분히‍ 힘 있는 스승도 많지 않죠. 그러므로‍ 육체적 접촉을 통해‍ 육신이나 영적 에너지를‍ 공양하는 것과 같은‍ 특이한 일들은‍ 말할 것도 없죠. 이유는 나중에 말해 줄게요. 추가된 건 상기시켜줘요.

어떤 스승이 희생한다면‍ 그것은 신체적 고통을‍ 통한 것이죠. 예를 들면 예수나, 그의 영혼에 축복을, 예언자 무함마드, 그에게‍ 평화가 있길, 그들처럼요. 또한 부처도‍ 고통받아야 했지만‍ 기록된 건 별로 없죠. 부처는 남자였으니까요. 남자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을 잘 안 해요. 그들은 거의 걸을 수조차‍ 없어도 『문제없다, 괜찮다』고 하죠. 사나이니까요.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죠. 그 모든 걸 견디고‍ 혼자 간직하는 게‍ 좋은 것이라고 배웠던 거죠.

난 안 그래요. 난 사나이처럼 못 해요. 대개는 혼자 견디지만‍ 말할 수 있으면‍ 말하죠. 여러분 중 누군가는 알고‍ 스승이 되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도록요. 스승이 되면 매우 영광되고‍ 아름답고, 모든 게 쉽고, 일요일에 나와서 멋진‍ 안경을 쓰고 좋은 얘기만‍ 하고, 일요일에는 주위에‍ 많은 경호원을 거느리는‍ 그런 환상 말이에요. 그런 식이죠.

스승이 고통받는다고 하면‍ 주로 신체적 고통이죠. 내가 방금 말한, 좋은 집안의 딸과 육체적‍ 관계를 가지려 했던‍ 그 라마승 이야기처럼‍ 고통받는 스승은‍ 매우 드뭅니다. 사실, 예를 들어‍ 예수처럼 육체적으로‍ 고통받으면 모두 여러분을‍ 숭배하고 여러분을 위해‍ 울며 기도하겠죠. 그리고 영겁의 세월이 가도‍ 여러분을 여전히 숭배하죠. 그건 실제적인 희생이고‍ 명백하고 끔찍하니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만‍ 해도 이미 끔찍한데‍ 못 박히기 전에도‍ 온갖 굴욕과 아픔, 고통을 당했어요. 그래서 많은 스승이‍ 고문과 독살, 살해, 절단,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지고‍ 화형을 당하는 등등, 모두 그런 것들 다 들어봤죠.

하지만 육체적 관계를‍ 통해 받는 고통은‍ 다른 거예요. 그건 정말 최고 고통이죠. 그래서 그런 스승이 있다는‍ 걸 거의 못 들어 본 거죠. 내가 해 준 얘기 말고는‍ 거의 언급된 게 없죠. 많은 승려는 그런 걸‍ 들으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까비르요. 그의 이야기도 들었죠.

다른 스승들은‍ 정결함을 엄격히‍ 유지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있으면‍ 문제가 생기니까요. 이성뿐 아니라‍ 동성 역시 그런‍ 성적인 욕망을‍ 전이시킬 수 있습니다. 고의로 그러는 것은 아니죠. 남자처럼 보이지만‍ 진짜 남자가 아닌‍ 일부 남자들 말고는요. 그들은 동성을 선호하죠. 그래서 일부 승려들은‍ 5미터 이내에 사람들이‍ 근접하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어요. 특히 여자는요. 그들의 자장에서 오는‍ 기운과 닿아서 문제가‍ 생기는 걸 피하려고요. 청정함을 지키길 원하죠.

그리고 탄트라 수행법은‍ 너무 강력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내가 말했죠. 사실 천국에서는‍ 성적인 힘이라 하지 않고‍ 『평화의 힘』이라 해요. 하지만 이 평화의 힘을 잘‍ 다뤄서 세계 평화를 위해‍ 쓸 수 있는 이는 드물죠.

놀랐나요? 이런 에너지를‍ 천국은 평화의 힘이라‍ 불러요. 놀랐나요? (네)‍ 전에 들어봤나요? (아뇨) 나도 그래요. 내가 수행을 해서‍ 위로 올라가서야‍ 비로소 알았어요. 필요에 의한 것이고‍ 필요한 상황 때문이죠. 그래야 이 지식을‍ 여러분에게 알려줄 수 있죠. 최종적으로 인간은‍ 『평화의 힘』이라‍ 불리는 이런 힘을‍ 알 수 있어요. 그 힘을 남용하지 않으면‍ 평화를 얻게 되고‍ 평화를 이루고‍ 세상에 평화를‍ 퍼트릴 수 있어요. 평화를 이루는‍ 많은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한 스승이 지구의‍ 평화를 증대하기 위해‍ 많은 영적인 힘을 줄 수는‍ 있으나 다 해줄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세세생생 그들‍ -인간과 동물들-은‍ 살생과‍ 학대 행위 등으로‍ 서로 간에 적대감을‍ 쌓아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 스승이‍ 영적인 힘을 주는 것만으로‍ 한 생에 그 모든 걸 다 지울 수는 없습니다.

스승은 늘 기꺼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스승이‍ 원하는 만큼 주는 게‍ 늘 허용되는 것은 아니죠. 그렇다면 평화가‍ 더 쉽게 더 빨리 왔겠죠. 그 힘은 평화의 힘이라‍ 불리는데 여러분한테‍ 설명하긴 매우 어려워요.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면 알려면‍ 해봐야 하니까요. 스승이 그걸 쓰고자 한다면‍ 적절한 방식으로‍ 쓸 수 있어요. 방법을 알죠. 하지만 아주 어렵죠. 그러니 쓰지 말아요. 아무튼 해야만 한다면‍ 방법을 알려줬으니 해봐요.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죠.

그건 최후의 수단이죠. 육체적 희생보다 더 한 것이니까요.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순교하면‍ 다들 여러분을 찬양하며‍ 숭배하고 믿겠죠. 하지만 여러분이‍ 이성과 이런 육체적인‍ 성적 행위를 한다면‍ 아무도 그것이 희생임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의 평판은‍ 땅에 떨어지겠죠. 우선 제자들이 떠나고‍ 그 다음은 기타 등등이죠. 신도들은 여러분을 뜨거운‍ 감자처럼 놓아 버리겠죠. 그러니 이걸 보세요. 이 방법은 능숙한 사람도‍ 결코 안 됩니다. 사실 많은 스승이‍ 이걸 가르치지 않습니다. 부처도 가르치지 않았죠. 첫째, 너무 어렵고‍ 위험합니다. 둘째, 사람들이‍ 그걸 남용할 수 있어요.

몇몇 섣부른 교사가‍ 나타나 이럴 수 있어요. 『오, 이 방법은 좋아요. 내가 그 방법을 아니‍ 모두 가르쳐줄게요』‍ 그런 다음 남용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들을‍ 비방하기도 하죠. 그들은 절반이나‍ 반의반만 익은‍ 『완전히 익지 않은』‍ 설익은 교사이죠. 그는 그게 편리하고‍ 즐겁고 하기 쉬우니‍ 이용하는 것뿐이에요. 종일 앉아 있고, 몇 시간 동안 명상하고, 하루에 한 끼 먹고, 간소한 옷을 입고, 소박한‍ 곳에서 살기보다 쉽죠. 그러면 유혹에 약한 많은 추종자와 신자들은‍ 이런 함정에 빠져‍ 자신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해치게 되죠.

그들은‍ 이것이 정도이고‍ 그 스승이 완벽해서‍ 할 수 있으며 그걸 통해‍ 해탈로 이끌어줄 거라‍ 생각하지만 그들 모두‍ 추락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면 진정한 법문을‍ 찾을 기회를 놓치게 되죠. 그래서 많은 스승은‍ 허용하지 않아요. 금기죠. 안 돼요, 안 됩니다. 일부 스승은 이걸 알지만‍ 금기시합니다. 그냥‍ 『안 된다』 하는 게 쉽죠. 그러니 더는 묻지 말고‍ 선을 넘지 마세요. 그 스승은 분명‍ 위에서 언급한‍ 그런 이유로‍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것이 이 법문의 해로움의‍ 전부가 아니에요. 더 많은 게 있어요. 시간이‍ 나면 설명해 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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