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방송에서 승천한 스승인 세인트 저메인의 메시지의 본질이 전체 인류에 닿아 모든 사람이 『마음속의 신』을 인정하게 되고 『생명의 영원한 법칙』이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든지 그것이 실현되고 무엇에 대해 명상하든지 그것이 되는 것』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스승을 만나다, 1장 발췌
『사람이 마음에 증오, 비난, 욕정, 질투, 비판, 두려움, 의심 또는 불신의 생각에 연연하도록 허용할 때, 그리고 이러한 짜증의 감정이 내면에 생기게 할 때 그는 분명히 자신의 마음과 육체, 세상에서 불화와 실패, 재앙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한, 나라에 대한 것이든 사람이나 장소, 상황이나 사물에 대한 것이든 그러한 작용을 자신의 마음과 몸, 그리고 일에 흡수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들을 자기 경험 속으로 강제하고 강요합니다. 이 부조화한 모든 활동은 자기 생각과 느낌을 통해 개인과 세계에 영향을 줍니다. 외부 인식에서 이런 생각을 알아차리기 전에 흔히 번득임이 있으며 그걸로 그런 생각을 통제할 수 있고, 이런 종류의 경험은 습관을 통해 축적된 그의 많은 창조물의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가르쳐주게 됩니다.
생명의 감정 활동이 인간 의식에서 가장 무방비한 것입니다. 생각에 따라 축적된 에너지가 미세한 물질로 변형하며, 그렇기에 생각이 물질이 됩니다. 당신에게 말합니다. 감정 통제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감정의 통제가 사람의 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고 몸의 건강을 지키며 일과 각 개인의 개별적 자아의 세상에서 성공과 업적에 영향을 줍니다. 생각이 감정의 옷을 입기 전에는 생각이 물질화되지 않습니다. 성신 또는 성령은 생명이나 신, 신성한 사랑의 활동의 감정적 측면입니다. 또는 신성의 모성적 표현입니다. 이것이 성신에 대한 죄가 그렇게 큰 고통을 가져온다고 언급되는 이유입니다.
감정의 불일치가 균형의 법칙인 사랑의 법칙, 즉 조화와 완전함을 깨트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법칙에 반하는 우주에서 가장 큰 죄악은 인류가 거의 끊임없이 화를 내고 파괴적인 감정을 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 인류는 이 지구와 대기에 나타나는 불길한 파괴력이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서 발생한 흔적임을 깨닫고 인식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일상적인 개인적 경험에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여 개인이나 나라가 그런 사건을 겪는 것입니다. 어떤 파괴적인 생각도 감정의 세계를 통하지 않으면 행동이나 사건으로 드러나거나 물질이 되지 못합니다. 이 물질화 과정에서 물질적 원자와 생각의 형태가 융합하는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폭발의 소음은 그것을 듣는 이의 신경계에 충격을 줍니다. 즉 신체의 세포 구조에 전율하는 느낌을 주듯이 똑같은 방식으로 화가 난 감정의 충격에서 나온 불꽃이 몸과 마음과 그 사람의 세상의 원자 구조 안에서 미세한 물질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그 사람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고의로 혹은 무심결에 그걸 내보냅니다.
부조화한 감정은 인간 경험의 세계에서 붕괴, 노년, 기억력 부족, 그리고 다른 모든 실패라고 부르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몸의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건물에 대한 영향과 동일합니다. 벽돌을 고정하는 모르타르가 반복되는 충격을 받으면 날마다 이 충격은 증가할 것입니다. 이 지속적인 충격은 모르타르를 구성하는 입자들을 떨어지게 해 그 건물은 무질서한 덩어리로 붕괴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가 끊임없이 인체의 원자 구조에 가하는 일입니다. 『자신 안에서 부조화한 생각과 느낌을 표출하는 것은 저항력을 최대로 없애는 과정입니다. 발달하지 못하고 훈련하지 못한 습관적 행동과 고집스러운 개인이 『자기 존재의 법칙』을 이해하길 거부하며 이 법칙에 순응하는 매개물인 개인적 자아를 가져오길 거부합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 없거나 통제하지 않는 자는 의식의 모든 문이 다른 마음이나 다른 사람의 감정이 버린 붕괴작용에 활짝 열려 있기에 나쁜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불친절하고 파괴적인 충동에 굴복하기 위해서는 지혜도 훈련도 힘도 필요치 않으며, 이런 행동을 하는 어른은 자기 통제력의 발달에 있어서는 아이입니다.
인류의 생명에 대한 손상으로 감정에 대한 통제가 너무나 안 되기에 인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르칩니다. 오늘날 서양에는 이 특정한 측면에 대한 필요성이 가장 큽니다. 부조화한 생각과 감정, 활동에 굴복하는 것은 분명히 쉬운 일입니다. 이는 인류 전체가 완전히 자신이 만든 환경과 관계 안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외부 의식을 통제하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 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러한 한계를 영원히 초월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과 느낌을 다스리지 않고는 자신의 삶과 세계가 불행, 불화, 파괴로부터 벗어나길 바랄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과 몸을 통해 흐르는 생명이 자신에 대한 세상의 온갖 사소한 방해에서 생긴 부조화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먼저 그러한 훈련은 단호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류의 95%가 생각과 감정을 고집 센 강아지처럼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달리게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과 감정 두 가지를 통제하기 위해 아무리 큰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하든지 가치가 있으며, 자기 생명과 세상에 대한 참되고 영구적인 통제를 그것 없이는 이룰 수 없습니다.
이 더 높은 법칙의 사용을 가르치는 것이 나의 기쁨이자 특권이며, 그 사용으로 참 지혜를 해방하고 모든 완전함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