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나 압박감이 없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먹든 다 천국의 맛 같을 거예요. 또 무엇을 먹든 개의치 않게 되죠. 물론 비건식에 한에서요.
예를 들어 리시케시와 다른 많은 성지에서는 술, 계란, 고기, 그런 건 전혀 안 팔아요. 금지됐어요. 그러니 거기 살면 확실히 비건식만 먹게 되죠.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늘 비건 식품만 팔아요. 작은 가판대도 전부 다른 건 없고 비건 음식만 있어요. 거기 계속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요. 지금도 거길 생각하면 향수를 많이 느껴요.
(10, 15년 전쯤에 리시케시의 몇몇 스승들이 비건식을 홍보했습니다. 예로 제가 어렸을 때 비건식을 홍보하는 전단지를 읽었어요. 우리는…) 어디서요? (리시케시에서요) 리시케시요? (예) 홍보할 필요가 없죠! 다들 비건식만 팔거든요. (예, 스승님)
오, 방문객들 말이군요. (예, 방문객들을 위해서요) 거기 갔었군요? (예) 당신을 못 봤는데요. 난 그곳을 참 좋아하지만 시내에서 살진 않았죠. 난 높은 산에서 살았어요. 흙집과 자연수만 있는 곳이었죠.
하지만 옆에 있는 갠지스강을 좋아했어요. 1, 2분이나 3분가량, 3분도 안 걸려요, 그냥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심취하게 돼요. 심지어 여름에도 물이 정말 시원합니다. 산 정상의 얼음이 녹아 내려오는 건데 얼음물이라 항상 아주 시원하죠.
이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요. 고마워요. 주방팀과 나눠요, 알겠죠? 이건 주방 팀 거예요. 안으로 가져 가요. 사과주스예요? 또요? 고마워요. 또 사과주스를 주네요. 내가 말했죠. 말만 하면 더 온다고요.
내가 인도에서 갔던 모든 장소들 가운데 리시케시가 가장 그리워요. 거기에선 모든 게 좋았거든요. 난 작은 흙집에서 살았지만 그곳을 정말 좋아했어요. 난 매일 지붕 위에 올라가 잤어요. 항상 몇몇 사람들이 같이 있었죠. 서양 사람들 두어 명이 주위에 있었어요.
나는 자연에서 얻은 물로 옷을 빨고 요리를 했어요. 요리는 거의 안 했지만 물은 정말 깨끗했죠. 그리고 갠지스강으로 내려가 목욕의식을 하고 바위 위에 옷을 널어 말리곤 했어요. 한두 시간만 말리면 입을 수 있었어요.
그곳이 그리워요. 기회가 되면 다시 돌아갈 거예요. 흙집일 뿐인데 인근에 물이 있고 갠지스강도 아래에 있죠. 3분도 안 걸려요. 오래 안 걸려요. 바로 강둑에 있어서요. 아주 높아서 내려가야 해요. 좀 비탈졌지만 길은 아주 좋아요. 흙길이지만 다니기 아주 좋죠.
난 다람살라의 숲에서도 머물렀어요. 역시 흙집이었죠. 거긴 더 문명화됐죠. 사람도 많고 서양인도 많고 남녀 출가승도 늘 많아요. 하지만 리시케시가 더 좋아요. 익사할 뻔했는데 그래도 거기가 좋아요.
난 갠지스강 한복판에 들어가서 명상했는데 그날 상류에서 비가 내려서 돌들이 다 잠겼죠. 징검다리가 보이지 않았지만 난 어찌해서 집에 돌아왔어요. 어떻게 건넜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수위가 높아지면 다 잠겨서 안 보이니까요. 수위가 높지 않으면 돌을 보고 건널 수 있죠. 돌을 딛고 나옵니다.
거기서 한 요기를 만났죠. 그는 갠지스강의 동굴에서 살았고 성자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가서 경의를 표하며 멜론을 공양했어요. 그때는 그럴 형편밖에 안 됐죠. 멜론은 아주 싸니까요. 인도에선 모든 게 싸요. 내 옷 역시 맞춤이지만 아주 싸요. 무명천일 뿐이죠.
가장 싼 무명을 골랐는데 여전히 아름다웠어요. 그걸로 옷을 맞췄죠. 두 벌을요. 내가 만난 요기는 나이가 많았어요. 동굴에 앉아 있었는데 주위에는 몇몇 제자가 있었어요.
난 말했죠. 『스승님, 이렇게 사시면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바람이 들어오고 모래가 사방으로 날리는데 불편하지 않으신지요?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그는 말했죠. 『아니다. 나보다 더 힘든 여건에서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 와, 그래서 함구했죠. 그 말이 맞아요. 인도에서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내 말은 스승은 그렇게 고생해선 안 된다는 말이었죠. 그런 뜻으로 말했어요. 이미 연로하니 편안한 곳에서 지내며 시중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그가 개의치 않으니 나도 개의치 않을 수밖에요.
난 다시 물었어요. 『오, 스승님,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말은 별로 없었지만 영어 구사는 완벽했어요. 이러더군요. 『거기 가거라. 거기 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다』 갠지스강 한복판이요. 갠지스강은 커요. 이렇지가 않죠. 『거기서 명상하거라』
『명대로 하겠습니다!』 난 그렇게 말 안 하고 그냥 예라고 답했어요. 그래서 명상했죠. 『얼마나 오래요?』 했더니 그는 『한 주 동안 해 보고 어떨지 보자』 했죠.
이 얘기는 이미 해줬죠? 언제 했죠? 생각 안 나죠. 오, BMD(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맞죠? (훨씬 전에요) 아뇨. 어디선가 들었어요. (1997년 LA강연 같아요) 며칠 전에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어째서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듯이 기억나죠. 누구에게 얘기했나 봐요.
그래서 거기 가서 엿새 동안 명상했고 하루 남았을 때 전남편이 찾아왔죠. 그런 오지에서 어떻게 날 찾았는지 모르겠어요. 산중에서요. 구루와 승려들이 많이 오고 가는 시내가 아니에요. 아니죠! 그저 서너 채로 나뉘어진 흙집 뿐이었어요. 아주 저렴했어요.
내 집 뒤로는 산에서 물이 흘러내려왔고 그래서 옷 등을 빨았죠. 물이 아주 맑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맑을 수 있나 몰라요. 수정 같았죠. 그 물로 집을 청소하고 마셨어요. 그때 그가 왔죠.
난 옷을 빨고 있었어요. 그가 뒤에서 나타났죠. 『오!』 나도 『오!』 그랬어요. 『왔군요, 잘 지냈나요』 그런 식이었죠. 『어떻게 찾았어요?』 그는 마법이 있었다면서 내 사진을 보여줬어요. 그게 마법이었죠. 델리에서부터 리시케시까지 오는 내내 모든 우체국과 모든 정거장에 들렀죠. (와!)
난 산꼭대기에 살았어요. 정상은 아니었지만 거기엔 몇 사람밖에 안 살았어요. 사원이나 아쉬람이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두세 사람만 함께 살았죠. 함께는 아니고 방이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그래요. 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난 말했죠. 『지금 바쁘니 기다릴 수 있겠어요? 곧 돌아올게요. 하루 더 명상해야 하거든요』 그런 뒤에 왔더니 가고 없더군요.
캐나다에서 온 중국인이 있었어요. 그는 전남편이 오기 전에 왔는데 와서는 머물 곳이 없다고 해서 『그럼 여기 내 방에서 지내요. 난 어차피 없고 소파에서도 안 자요. 위층에서 침낭을 사용하니 여기서 지내도 돼요』 했죠. 그가 말하길 여자친구가 올 것이고 임대할 방을 구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난 『며칠 뒤 옆방이 비게 될 텐데 그때까지 여기 있어요』라고 했죠. 그래서 그는 짐을 풀고 거기서 지내게 됐고 난 갔어요. 그 동안 남편이 왔고요. 난 명상하러 갔죠.
내 집이 있는 곳에서 내가 명상하는 강 한가운데 작은 섬까지는 멀었죠. 3km 정도 걸어가야 했어요. 스승님은 다른 말없이 『거기서 명상하라』 했죠. 내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명상법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는 말이 별로 없었는데 이런 당부만 했죠. 『그 소녀를 만지지 말아라, 브라만이니까』 난 그럴 자격이 안 됐죠. 브라만은 만지면 안 돼요. 같은 브라만만 만질 수 있죠. 브라만은 어떤 표식이 있어야 해요. 띠가 있나 그래요. 여자는 그런 걸 안 하죠? (남자들이 해요) 남자만 하죠.
그러면 여자는 어떻게 브라만인 걸 입증하죠? 여자는 브라만이 될 수 없죠, 그렇죠? (대개 남자가 브라만이면 가족 전체가 브라만으로 간주됩니다. 남자가 브라만이면 그 가족을 브라만으로 여기죠.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여자들이 무슨 표식을 갖고 있는지…) 신분증도 아니고… 아무튼요.
그 소녀는 갠지스강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어오려고 했는데 내가 도와주려 하자 소리를 질렀어요. 그래서 스승께서 『만지지 말라, 그들은 브라만이다』라 하신 거죠. 난 『죄송하다』고 했죠.
그런 뒤 명상을 했죠. 명상하러 갔는데 돌아와서 보니 이미 어두워졌고 남편은 가고 없었어요. 소위 남자친구만 남아 있었고요. 『남편은 어디 있어요?』 『갔어요』 『왜 갔어요? 날 보러 왔는데 왜 갔죠? 그는 방금 왔고 얘기도 별로 안 했는데 그냥 가요? 왜요? 그 카메라는 내 건데 왜 여기에 있죠?』 내게 주라고 놓고 간 거죠. 그를 남자친구라고 오해하고 말이에요.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죠. 아닌가요? 난 애초부터 남자친구가 없었어요. 더군다나 중국인은요. 생식하는 중국인이었죠. 속이기도 했지만요. 생식을 한다면서 차파티도 먹었거든요. 차파티는 생식이 아니죠. 안 익힌 차파티가 아니라 익힌 걸 먹었어요. 다른 건 생으로 먹었고요.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물었더니 『별말은 안 했어요. 독일로 돌아간 댔어요. 그가 내게 카메라를 줬어요』라 했죠. 난 말했죠. 『뭐라고요? 내가 생일 선물로 준 카메라인데 왜 당신에게 줘요? 그에게 뭐라고 했죠? 뭐라고 했어요?』 슬슬 화가 났죠.
『아무 말 안 했어요. 여기에 사느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죠』 거기서 산다고 했대요. 『여기서 자고요?』 『네, 자죠』 침대는 하나였죠. (오) 거긴 내 방이었어요. 그가 없었을 때 전남편에게 내 방을 보여줬거든요. 근데 그가 와서 자기 방이라고 한 거죠. 공교롭게도요!
책 한 권으로도 해명이 안 될 거예요. 난 말했죠. 『오. 알겠어요. 이제 알았어요. 떠난 지는요?』 『방금 전이요!』 산을 뛰어내려갔어요. 난 돈이 별로 없었지만 마차를 빌렸어요. 보통은 마차에 열 사람 정도 함께 타고 가요. 그럼 더 싸니까요. 아무도 통째론 안 빌리죠.
『마차 빌릴게요』 하자, 마부는 『비싸요! 돈, 돈은 있어요?』 했고 난 『있어요. 돈, 돈 있어요』 했죠. 돈을 치렀죠. 난 『지금 낼게요』 했죠. 그럴 형편이 안 됐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며칠 사모사를 안 먹으면 해결되리라 생각했죠. 그래서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 갔더니 매표소에서 이러더군요. 『방금 출발했어요』 영화가 따로 없었죠!
그렇게 간발의 차로 떠났죠. 따라잡을 수단도 없었고요. 아무리 돈을 많이 지불해도 마차로는 안 돼요. 마차로는 못 잡아요. 버스는 가 버렸어요! 오, 세상에! 하지만 그곳을 정말 좋아했어요. 왜 그렇게 좋아했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남편은 돌아왔죠. 전보를 쳤거든요. 전보 칠 형편도 아니었지만요. 난 매일 돈을 계산해서 썼어요. 사모사를 하나 더 먹으면 다음 날엔 먹지 않았어요. 하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난 정말 행복했죠. 내가 살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거기로 돌아가겠어요. 정말 자유로웠거든요.
집은 정말 쌌어요. 임대료를 내지만 거저예요. 선물 같았죠. 별 건 없었어요. 사람들은 정말 다정했고요. 척추지압사도 있어서 무료로 몸을 두드려 줬죠. 나는 그날까진 척추지압사가 뭔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는 중국의 척추지압사들과는 달리 아주 부드러웠어요.
오 세상에! 온몸이 비명을 질렀죠. 아주 부드럽게 했지만요. 나는 『돈은 하나도 없어요』라 했어요. 그는 『괜찮아요. 당신은 무료예요』라 했죠. 내 몸을 뒤틀고 곳곳을 두드렸지만 아주 편안한 느낌이었죠. 척추 지압요법사였어요.
그렇게 외딴 산에서 방을 하나 빌려 침대를 놓고 사람들을 두드리며 대체 그가 뭘 하는 건가 했지요. 그 후로는 많이 캐묻지 않았어요. 그는 이웃일 뿐이었죠. 그는 그의 일을 하고 난 내 일을 했어요.
내가 다가간 적은 없어요.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죠. 내 손을 씻겨주고 몸을 두드리고 마사지해주고 머리를 땋아주고 그랬죠. 사람들이 아주 다정했죠. 방문자들도요. 그는 필리핀에서 왔고 인도인이 아니었어요. 거기 온 거죠. 모르겠어요. 아마 휴가를 보내러 왔겠죠. 난 묻지 않았죠.
무료 마사지를 받으면 빨리 가는 게 낫죠. 그의 맘이 바뀌기 전에요. 낼 돈이 없잖아요? 그는 사람이 좋았어요.
난 그곳을 정말 좋아했죠. 이유를 모르겠어요. 인도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곳이에요. 다람살라에서도 방을 빌릴 수 있어요. 아주 싸죠. 흙집이고요. 하지만 리시케시에서처럼 그렇게 즐겁진 않았어요. 아마 기운, 분위기 때문이겠죠.
거기 가는 사람은 비건이 되어야 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뭐 하러 거기 가서 비건 홍보를 하겠어요? 거긴 선택의 여지가 없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