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강연: 존재의 영혼과 실체 2권, 3권
대우주와 소우주의 바깥을 감싼 것은 흙이나 몸이며, 그렇기에 그것은 기본물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 원소의 화합물이다. 그 비옥함은 물 때문이며, 그 변형과 화학적 힘은 불 때문이다. 물은 핀다로스의 『이상형』인 영혼에 해당하며, 불은 신체에 해당하며, 영은 영혼에 해당한다.
영혼이 영에 의해 소생할 때까지 신성과 생명이 없듯이, 육체 즉 흙이나 물질은 불이 없다면 육체적 생명이 없다. 모든 물질에 불의 요소가 있기에 어떤 물질도 죽은 게 아니다. 그러나 만약 불이 없어서 움직임이 멈추면 물질은 물질로서 존재하기를 멈추고 죽게 될 것이다.
움직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열이 있고, 따라서 불도 있다. 움직임이 물질의 조건이기에, 불이 없으면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물질은 생명의 한 형태이다.
영혼의 역사와 진보
영혼은 식물에서 동물과 인간으로 위로 올라간다. 인간에게서 영혼은 완전함과 물질적 육체가 전혀 필요 없는 힘을 얻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영혼의 완전함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그리고 영혼의 총체적 목적과 종교의 목적은 완전함의 성취이다.
영만이 선하며 신이다. 물질은 영이 제한된 것이며, 물질 안에 악의 원인이 있다. 악은 선이 제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질과 그 제한에서 벗어나 영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악에 대한 책임보다 더 중요해야 한다.
옛날에는 인간의 영혼이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지금보다 더 열려 있었고, 그 길은 더 분명했다. 왜냐하면 지적인 것에 대해 많이 무지해도, 특히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신적인 것에 대한 지식과 믿음의 빛이 더 강하고 순수했기 때문이다.
아니마 브루타, 즉 지상의 정신은 덜 강했으며 덜 확립되었기에, 아니마 디비나 즉 신성한 마음이 더 열린 환경에서 존속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지구에 속박되지 않은 그 시대 세상의 영혼은 화신을 통해 더 빨리 통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몇 번의 윤회로 충분했으나 지금은 많은 윤회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엔 마음의 무지가 믿음으로 줄어드는 대신에 물질주의에 의해 더 무거워지며, 육신에 대한 사랑과 무신론, 그리고 감각적인 것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영혼은 지구로 가라앉는다. 그것 때문에 뭉개지며 지구의 대기에 오래 남아서 많은 새로운 거주지를 찾고, 그래서 이전에 만들어진 것에 의해 영향을 받은 각각의 환경, 즉 많은 몸을 찾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만들며, 성격이 운명임은 정말 진실이다. 자신의 손에 의해 어떤 이는 즐거운 장소에 가거나 잔인한 곳이나 고결한 곳에 가게 되니, 독단적이거나 부당한 것은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영혼은 행위나 생각과 습관에 의해 스스로 하나의 환생에 들어가며, 미래의 환생에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만든다. 영혼은 이런 전생의 영향에 묶여있기에, 행성들의 합이나 표식들이 있을 때 새 환생으로 끌고 가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특정한 길을 강요하고, 거기에 강하게 끌리게 된다.
그러나 만약 영혼이 이러한 영향에 대항하고 다른 길을 택한다면, (그것 자체도 이득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행성과 그 환생의 지배적인 표식이 힘을 가진 기간은 『저주』 아래 있게 된다. 이는 세속적 의미에서 불행을 뜻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영혼엔 행운이 된다.
영혼은 그 안에서 과거에 행한 악에 대해 속죄하고 보상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더 높고 더 행복한 상태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사람은 자신의 창조자가 된다. 자신이 조성한 경향에 따라 자신과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선의 과정은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오랜 세월 조성한 경향을 한 생에 고칠 수는 없으며, 고치는데 오랜 세월이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결점을 고쳐야 하지만, 남들의 잘못에 대해 참을성을 가지도록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