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계속 말했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모형으로 사용해 더 고차적 지식을 보는 데 이용해야 하네. 그 아름다움은 우리가 보게 될 다이달로스나 다른 위대한 예술가의 손으로 멋지게 만든 형상이나 그림의 아름다움과 같네. 그걸 바라보는 기하학자는 그 정교한 솜씨를 감상하겠지.
그러나 그는 하늘에서 완전히 똑같거나 완벽한 2배 또는 다른 비율의 진리를 찾을 걸 꿈꾸진 않네. 진정한 천문학자가 별의 움직임을 볼 때 같은 느낌을 갖지 않겠는가? 그는 하늘과 하늘의 천체를 창조주가 가장 완벽하게 계획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밤과 낮의 비율, 또는 밤낮과 달의 비율, 월과 년의 비율, 별과 이들의 비율과 서로 간의 비율, 그리고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다른 모든 것의 비율이 또한 영원하고 편차가 없다고 상상하진 않네.
그것은 어리석으며, 그들의 정확한 진실을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도 어리석지.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천문학도 의문을 이용해야 하며, 주제에 올바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이성의 천부적 선물을 제대로 사용하게 되고 하늘은 내버려 둬야 한다네. 움직임엔 한 가지만이 아니라 여러 형태가 있네. 그중 두 가지는 우리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고, 다른 것은 더 현명한 사람에게 맡겨야 하네.
이미 명명한 것과 짝을 이루는 두 번째가 있다네. 첫째는 눈과 관계되며, 둘째는 상대적으로 귀와 관계되어 보이네. 별을 쳐다보기 위해 눈이 만들어졌듯이 조화로운 움직임을 듣기 위해 귀가 있다고 생각하네. 피타고라스학파가 말했듯 이들은 자매 학문이네. 글라우콘, 우리는 그들에게 동의하는가?』 글라우콘이 답했다. 『네』
소크라테스가 계속 말했다. 『그러나 이건 어려운 학문이므로 가서 배우는 것이 좋다. 그들은 이런 학문을 다른 곳에 적용할 수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더 높은 목표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천문학이 그러하듯, 모든 지식이 도달해야 하고 우리 학생도 성취해야 하는 모자람이 없는 완전함이 있다. 자네도 알다시피 화성학도 마찬가지이다. 화음 교사는 단지 들려오는 소리와 공명을 비교하며, 그들의 수고는 천문학자와 마찬가지로 헛되다』
글라우콘이 주장했다. 『예, 분명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축약된 음표를 듣는 것만큼 연주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들은 이웃의 담에서 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현 옆에 귀를 가까이 대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는 중간 음을 구분했고 측정 단위가 되어야 할 최소 간격을 찾았다고 선언하고, 다른 이들은 두 소리가 같은 음으로 전달된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쪽이든 이해하기 전에 잘 들어봅니다』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다. 『자네는 악기의 줄감개에 현을 걸고 뜯고 희롱하는 그들 신사를 말하는가. 은유를 계속하면서 픽을 치면서 두드리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 현을 앞뒤로 움직였을 때 나는 소리를 비난하는 자들 말인가?
하지만 이것은 지루할 것이므로, 그 사람들이 아니라 나는 피타고라스학파를 언급하는 것이며, 나는 화음에 관해 물어보길 제안하네. 그들도 천문학자처럼 오류를 범하고 있네. 그들은 귀에 들리는 화성의 수를 조사하지만 결코 의문에 답을 얻지 못하네. 즉 곡의 자연적 화음에 절대 이르지 못하거나, 어떤 곡은 조화롭고 다른 곡은 아닌지 알지 못하네』 글라우콘이 대답했다. 『그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우리가 유용하다고 말하는 사물도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다른 관점에선 쓸모가 없네. 이제 이 모든 연구가 상호 교류하고 서로 연결하는 정도에 이르고, 그 유사성을 고려하게 될 때만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에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그렇지 않다면 아무 이로움이 없네.
그러니 글라우콘, 우린 마침내 변증법을 찬미할 지점이 왔네. 이것은 오직 지성을 혹사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시력을 모방할 수는 있을 것이네. 기억하겠지만, 시력은 우리가 실제 동물과 별, 최후엔 태양을 잠시 바라본 후에 상상한 것이네. 변증법도 마찬가지라네. 사람이 어떤 감각의 도움 없이 오직 이성의 빛으로 절대적인 것을 발견하기 시작하여, 순수한 지성이 절대적 선을 인식할 때까지 애쓸 때 보이는 것의 끝에 시력이 있듯이, 그는 마침내 지적 세계의 끝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네.
친애하는 글라우콘, 내 생각에 자네는 형상뿐 아니라 절대적 진리를 봐야 하네. 내가 자네에게 말한 것을 성취했는지 아닌지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자네가 진실과 비슷한 무언가를 봤을 거라고 나는 확신하네. 하지만 변증법의 힘만이 이것을 드러낼 수 있고, 옛 학문의 제자만 이것을 밝혀낼 수 있음을 나는 일깨워주어야 하네. 그런 주장에 대해 자네는 지난번처럼 확신할 것이네.
확실히 모든 진실한 존재 또는 각각의 본성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규칙적인 과정을 통해 이해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을 것이네. 예술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욕망이나 견해와 관련이 있거나 생산과 건축, 또는 그런 생산품과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육성된다네.
우리가 말했듯이, 진정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하학 등과 같은 수학에 관해 말한다면, 그들은 존재에 대한 꿈만 꾸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가설을 검토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한, 깨어 있는 실상을 결코 볼 수 없다네. 사람이 자신의 첫 번째 원칙을 알지 못하고 결론과 중간 단계도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모르는 경우, 그러한 통념의 구조가 학문이 될 수 있다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