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계속해서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의 저서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비밀을 밝히다』를 읽겠습니다.
마야인이 믿는 『평행 세계』와 『나흐트』(시공간)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대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야의 고대 지혜와 접하자 자신이 진정한 근원에 대한 지식 없이 산만하고 혼란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영적 안내자인 돈 파스쿠알로부터 다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중심이 내면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돈 파스쿠알이 말했지요. 「어릴 때 한 장로를 만났다. 어떤 이는 그를 노인 중 최고령자라 불렀고 다른 이는 그를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묘사했다. 나는 그의 신뢰를 얻었기에 그가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는 우주와 창조주가 원해서 만든 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창조주는 조물주를 만났고, 그들은 그들 의지가 구체화한 현실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흐트, 즉 시공간이라는 마법이 생겼다. 예정된 장소에 현실은 존재하며, 이는 형상을 만드는 능력과 에너지 또는 비현실성을 표현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타고난 순수함을 잃고 나서 이것을 배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 삶은 이 무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며, 그때 우리는 나약해진다. 이 인류는 허영심을 가졌고 창조주를 잊은 까닭에 위대한 아버지에게 벌을 받은 후 길을 잃게 되자 그는 우리의 시조인 발라메브, 발람 키체, 발람 아카브, 마후쿠타흐와 아키 발람을 보냈다. 이들은 위대한 현자이자 선각자였으며 놀라운 마법사였다. 그들 고향이 우리의 고향이며, 그들 전통은 우리의 전통이며, 그 유산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예술을 가르쳤고 지식을 전했는데 우리 최초의 선조가 온 곳에서 현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돈 파스쿠알이 말했습니다. 「이 얘기로 내 인생을 바뀌고 나는 갑자기 우리가 가진 공통의 기원을 이해했다. 우리 선조의 신성이 위대한 영, 태양들의 태양에서 받은 존엄성이며 그 지식은 별들과 지구 양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내 여정의 시작이고, 이 이야기가 우리 선대의 전통으로 돌아가려는 제 소망을 일깨웠다」』 여러분은 마야인에게 나흐트(시공간)가 정확히 어떤 뜻이지 궁금할 겁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 『서양의 더욱더 직선적인 시각과 달리 마야인의 시간 인식은 공간과 진동수와 얽혀있습니다. 서양에서 시간은 일정과 안건이라는 형태의 한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표현으로 완벽히 요약됩니다. 공간은 소유의 형태로 물질적이고 영토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분리 때문에 갈등과 혼란이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구전된 마야 선조의 이야기에 의하면 만물은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 존재하며 이는 플레이아데스(별자리) 바로 옆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 하나의 소용돌이에 우리가 테오스, 즉 우주라고 부르는 물질적 형태를 가진 만물이 담겼습니다. 본질이 없는 모든 것은 이 소용돌이 밖에 존재합니다. 이런 해석 안에서 마야인은 나흐트를 진동수를 더한 시공간으로 정의합니다.
이 세 요소는 우리가 현실로 아는 것과 이 현실 안에 존재하는 물질을 설명합니다. 존재하는 만물은 에너지이고 모든 것은 주파수 또는 진동을 가졌지요. 이 때문에 모든 생명이 차별화됩니다. 가령 사람의 에너지 즉 진동은 돌보다 더 빠르지만 둘 다 에너지로 이루어집니다. 둘의 차이는 진동에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중요한 영적 전통에서, 성인들은 내면의 천상의 『빛과 소리』에 대한 명상을 깨달음의 방편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수천 년 전에 이 행성에 거주했던 사람들도 똑같은 방법을 수행했다고 설명합니다.
『「(내면의 천상의) 빛을 따르라」라고 들었습니다. 어둠이 부정적인 것처럼요. 그러나 마야의 현자들이 빛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라는 의미입니다. 앞서가서 빛의 속도를 넘어서라는 의미입니다. 빛과 어둠은 단지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일단 이것을 이루면 현실과의 관계는 더는 직선이 아닙니다. 우리가 빛을 조종할 수 있다면 내면의 영과 의식의 제약을 산산이 부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새 길을 개척하고, 모든 것이 뚜렷해집니다. 이때 우리는 존재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더는 악마와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공간의 한계 밖에 있습니다. 진동이 초월과 그런 한계를 넘는 수단이 됩니다.
우리가 본질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신과 접촉합니다. 무한한 공간에는 행성 간에 가시적인 빛이 없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태양을 반사하고, 태양의 중요성을 드러낼 뿐입니다. 모든 것은 아흐푸 즉 태양에 기인하며, 만물은 은하의 중심 즉 블랙홀과 관련됩니다. 우리는 사실 거대 소용돌이의 회전 속에 돌고 있습니다. 거대 소용돌이의 경계는 서로 접촉하며, 그때 우주에서 조정이 일어납니다. 마야인은 시공간을 여행하기 위해 이 경계를 돌파하는데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나흐트에 살며 대부분 사람이 그걸 이해하죠.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 사람이 갇힌 곳을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를 둘 다 관념적인 과거나 미래라는 것으로 이끕니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재했었지만 지금은 기억일 뿐입니다. 미래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단지 이 순간, 바로 이 순간, 영원한 현재만 존재합니다』
마야인의 세계관은 영적인 관점이며 세속의 삶과 참된 내적인 의미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계속해서 우리의 평범한 삶의 통찰 너머의 이런 내적 차원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우주에서 폭발은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폭발에 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정신적으로 폭발해야 합니다. 이는 다음의 질문을 낳습니다. 그러면 다른 차원이나 현실이 존재하나요?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시간, 공간, 진동이 다르게 측정되거나 배열되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차원들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인식 밖에 떨어져 있다 해도 수천의 다른 차원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선조들은 이런 비현실적인 차원을 「구성되지 않은 우주」라고 부릅니다. 「포폴 부흐」는 낙원을 평행 차원으로 이야기하며 팍실과 카얄라로 부릅니다. 팍실에서 우리의 인식은 다릅니다. 우리 감각은 예민해지고, 평온하며 조화롭고 평화로운 에너지로 둘러싸입니다.
이것은 매트릭스, 즉 근원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나흐트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팍실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 우리 세상에선 일 년이고, 카얄라에서 일 년 동안 일어난 일은 여기서 하루가 걸립니다. 따라서 다른 차원에서는 공간, 시간 및 진동의 기준이 다릅니다. 빛은 이런 평행 차원에서 다르게 작용합니다. 거기엔 태양이 없습니다.
빛은 더 밝지만 더 뜨겁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맑고, 만물을 아우르는 빛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과일과 가장 놀라운 돌이 팍실에서 발견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우리가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진정으로 사랑받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