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면에 잠재된 최고의 힘을 얻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에요. 이를 모든 종교에서 『지고한 존재』라 부르죠. 부처님 명호는 무상사에요. 그리스도의 이름은 지고한 존재죠. 난 당신이 그 힘을 찾길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말과 몸과 마음이 순수해야 해요. 가령 어떤 폭력도 생각해서는 안 되고 사랑, 용서, 관용, 인내를 생각해야 해요. 말은 동료에게 지혜와 위안을 주는 말을 해야 하고 몸으로 순결한 삶, 어느 정도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해요.
내면의 눈도 비슷합니다. 비록 내면의 눈이 열렸다 하더라도, 몸의 눈과 효과가 같아요. 앞이나 당신이 보는 방향만 볼 수 있어요. 자, 귀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체적 귀조차도 다차원적 목적이 있어요 - 위에서 들을 수 있고 아래에서 들을 수 있고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뒤에서, 정면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예) 이제 우리 내면의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방에서 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 모든 걸 알게 되죠. 이해했나요? (예)
보기만 하고 듣지 못하면, 청각 장애입니다. 그때 한 기관은 정상이 아니거나 사용하지 않으니; 우린 완벽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청각 기관은 내적이든 외적이든 완벽한 기관이죠. 눈보다 더 완벽해요. 그러므로 듣는 법을 연습해야 해요. 밖은 육신의 눈으로 보고 육신의 귀로 듣습니다. 내면에서도 천국의 눈으로 보고 천국의 귀로 들어야 해요. (내적 천국의) 소리는 사방에서 오기 때문이죠.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내적이든 외적이든 청각 기관을 사용해야 해요. 귀가 정상이 아니면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면의 귀도 완전한 정상이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에게 내면의 귀가 있지만, 아직 열리지 않았죠. 입문 때, 내가 내면의 귀를 열도록 도와주면 다른 차원의 천상의 진동을 듣게 됩니다. 이 진동, 즉 이른바 성경에서 묘사하는 말씀과 접촉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능력, 모든 축복, 모든 덕, 모든 만족, 모든 행복을 누리게 되며 주변 사람에게 모든 지복을 베풀고 우리의 존재로 인해 주변 환경도 축복받죠.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곳의 존재와 장소가 신성해지고 축복받습니다.
그들은 알든 모르든 더 행복해지고 인간의 의식이 더 고양되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알지 못할 거예요. 그들은 우리와 접촉하며 의식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왜 그런지 몰라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세상에 전하는 방법이죠. 우리가 이 신의 힘과 접촉한다면, 그것을 나눠줄 수 있어요. 그것이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기여입니다. 물질적 도움이나 재정적 도움보다 더 큰 기여이며 최고의 기여는 - 하나님의 축복이고 지혜입니다. 몇 가지 다른 것이 있죠…
또한 스승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립니다. 우선, 이 두 가지 기본 조건으로 스승을 알 수 있지만, 스승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기 위해서는 자기의식이 더 높아져야 해요. 하지만 당신의 금전적 또는 물질적 기부를 악용하지 않는 안전장치가 있어요. 이렇게 되면 안전해요. 『적어도 그 사람은 내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니 안전하게 그 사람과 배울 수 있잖아. 그다음에 좋은지 아닌지 보자, 좋지 않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 잃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는 당신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어떤 것도 잃지 않는다는 의미죠. 어떠한 조건도 없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안전해요. 그 스승이 좋은지 아닌지는 나중에 논의해요. 적어도 당신의 순수함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의 어떤 기부도 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것이 참 스승의 징표죠. 적어도 안전하니 됐어요. 입문 때 당신은 스승이 가진 힘의 일부를 알게 될 겁니다. 그 후에 수행하면서 날이 갈수록 자신을 정화하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지혜가 열려 스승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됩니다. 스승을 아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 않아요. 하지만 전수 시간 즉 입문 때 스승이 주는 증거를 통해 조금은 알 수 있죠. 네,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것이 안전한 표식이죠. 다른 것을 아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리지만, 알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매일 축복을 받기에 스승을 아주 빨리 알게 됩니다. 삶이 매일 바뀌죠. 매일 행복과 힘을 얻어요. 그들은 매일 알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전수할 때 어느 정도 알 수 있죠.
(칭하이 무상사님, 현재 이 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는 동물주민 권리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방식에 동의하세요?) 동물 주민 권리요. (네) 동물 주민 권리 운동요? (운동, 네) 전적으로 동의해요. 나는 비건 지지자이고 동물주민의 무고한 생명에 대한 폭력에 동의하지 않죠. 물론 전적으로 지지해요.
(불교를 공부하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이며 어디서 공부할 수 있나요?) 불교를 공부하는 올바른 방법은 내면으로 들어가서 교리가 아닌 자신 안에서 부처님을 찾는 겁니다. 부처님은 『부처는 네 안에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죠. 그분은 부처가 교리나 교회, 절에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것을 잊었죠. 그분이 돌아가신 후 우리는 많은 절을 짓고 그분의 형상을 만들고 목조 불상 앞에 절해요. 그러고는 그분께 이것저것을 요청하죠. 목조 불상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기에 우리는 부처님에게 힘이 없다고 생각하며 좌절해요.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죠.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내면으로 들어가며』 내겐 그 방법이 있어요. 부처님을 찾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어요.
(어떻게 항상 행복하고 불멸할 수 있나요?) 어떻게 행복하고 불멸할 수 있나요? (네, 항상요) 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에는 길이 있죠. 그것을 어디에서 찾는지 알아야 해요. 영원히 살고 행복하고 싶다면, 내가 그 방법을 알려드리죠. 매우 쉬워요. 그것을 얻기 위해 매일 조금씩 시간을 할애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알게 될 거예요. 어떤 사람은 며칠 걸리고 어떤 사람은 첫날에 자신이 불멸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어요. 직접 경험해야 하고 자신만 알 수 있지요. 그 후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물을 거예요. 『어때요?』 그러면 나처럼 다시 말을 못 하게 되겠죠. 우린 많은 걸 말할 수 없죠. 그것을 스스로 알고 깨닫고 경험할 뿐입니다.
(입문이란 무엇인가요? 입문을 위한 어떤 요구 사항이 있나요?) 밖에서 우리는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작성해요. 나는 무엇도 요구하지 않죠. 당신이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약간의 훈련이죠. 가령 우리가 동물성 음식을 먹고 산다면 그것이 영적 삶에 해롭고, 이제 그걸 끊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씀드리죠. 당신을 위해서죠. 나를 위해선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남편이나 아내를 바꿀 필요도 없어요. 직업을 바꿀 필요도 없고, 사회적 접촉이나 종교를 바꿀 필요도 없지요.
기독교인이면 계속하세요. 유대인이면 그걸 믿으세요. 어떤 종교나 어떤 종파에 다니든 자유롭게 그곳에 머물러도 되죠. 나는 내면에 잠재된 최고의 힘을 얻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에요. 이를 모든 종교에서 『지고한 존재』라 부르죠. 부처님 명호는 무상사에요. 그리스도의 이름은 지고한 존재죠. 난 당신이 그 힘을 찾길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말과 몸과 마음이 순수해야 해요. 가령 어떤 폭력도 생각해서는 안 되고 사랑, 용서, 관용, 인내를 생각해야 해요. 말은 동료에게 지혜와 위안을 주는 말을 해야 하고 몸으로 순결한 삶, 어느 정도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해요. 순결한 삶이란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가 한 명뿐이라는 뜻이에요. 그게 다예요.
그것이 순결한 삶이죠. 그리곤 순결하다는 것은 모든 종류의 마약, 술, 도박 등 - 이런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몸을 약하게 만들고 정신병을 유발해요. 그게 순결한 삶이죠. 순수한 삶. 그러니 몸과 말과 마음을 하느님의 미덕에 맞춰야 해요. 그게 내가 말하는 바예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되고 싶기에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가』되고 싶어 하죠. 이제 하나님이 도박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끔찍한 간음을 하고 온갖 저급한 욕망이 있는지 궁금할 거예요.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려면, 당연히 자기 몸과 말과 마음을 하나님과 맞게 올려야 해요. 이것이 조건이죠. 비건이 되어, 말을 순결하게 하고, 마음은 다정하고 폭력적이지 않아야 해요. 그게 다예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사람을 때리곤 했는데, 이제 이 법문을 수행하고 싶다면 더는 때리지 마세요. 그게 다예요. 전에는 동물주민 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했다면 이제는 생명에 대한 자비와 사랑으로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신 의식이 한 단계 더 높고 자비심이 더 많음을 보여줄 수 있지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조건이에요. 아주 쉽죠. 아닌가요? 네, 할 수 있어요.
(과거의 업보가 현생에 영향을 미치나요? 어떻게 믿고 그 증거는 무엇인가요? 감사합니다) 이걸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시도해 볼게요. 우리는 필멸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전생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어요. 현재에 대해 말할 게요. 그게 이해하기 쉬워요.
예를 들어, 매일 술을 마시고 아침에 술을 마시면 오후에는 어떤 기분이 드나요? 멋져요? 환상적이에요? 혹은 취기, 끔찍함, 두통, 비참하고 멍함을 느껴요? 기분이 끔찍하죠? (네) 이것은 우리가『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업보』라는 것의 결과예요. 아침에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면 정오에 그렇게 끔찍하지 않거나 오후에 그렇게 끔찍하지 않을 거예요. 정신이 맑고 매우 행복하며 매우 정상으로 느끼겠죠. 이게 업보 효과이며 이를 『현재에 영향을 주는 과거』라고 부르죠. 아주 쉬워요. 이런 것들은 같은 시간과 현재에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지요. 그러나 아주 오래전, 수백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죠.
다시 태어날 때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어요. 몸에 새 옷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난번에 어떤 옷을 입었는지 잊어버리죠. 과거를 잊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축복이기도 해요. 우리가 전생에 호랑이나 늑대였거나 아주 끔찍한 대통령이나 아주 끔찍한 왕인 것을 기억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는 우리에게 매우 큰 압박감을 줄 거예요. 우리는 일상의 압박감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업보, 정신적 부담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얼마나 더 힘들까요?
그래서 우리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함은 축복이죠. 그것은 신과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업의 신께서 특별히 계획한 것으로 그래야 우리가 삶을 견디며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