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지금보다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도 알아둬야 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옛날 사람들은 편의시설도 적었고, 모든 걸 손으로 직접 해야 했어요. […] 그들은 그저 하루 두세 끼 먹을 충분한 음식과 옷 몇 벌만 있으면 됐죠. 어디 돌아다닐 일도 없으니 가슴골이나 허리를 드러내며 자랑할 필요도 없었죠. 예를 들어, 내 허리처럼 125라든가요. 그래서 비싼 옷이나 고급 향수도 필요 없고, 머리를 잘 매만질 필요도 없었죠. 자동차도 필요 없었죠. 어디 갈 일이 없었으니까요. 아마 그들은 욕망도 더 적었을 거예요. 다른 도시에 뭐가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모르는 것에 대해선 마음을 쓰거나 욕심을 내지 않았겠죠. 그렇죠? (네)
오늘날,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가난이 아녜요. 가난은 태초부터 존재해 왔으니까요. 오늘날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더 이상 가난이 아니라 이웃의 부유함이죠. 여러분에게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남들이 가진 것이 문제가 되죠. 그래서 이런 농담이 있죠. 어떤 여자는 다이아몬드 알레르기가 있는데, 다른 여자가 다이아몬드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배가 아프다는 거예요. 그게 문제이죠. 마음은 항상 비교하니까요.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이웃이 가지면 괴롭죠. 허나 자신도 갖지 못하고 이웃도 갖지 못하면 아무 문제없어요.
우리가 늘 환상을 갖고 있어서 그래요. 부자들의 돈이 모두 우리 주머니로 들어오면 그들처럼 부자가 될 거라 생각하지만 안 그래요. 이론일 뿐이죠. 이론은 그럴지 몰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돈만 쓴다면, 은행 잔고가 아무리 인도 수미산 만큼 많다 해도, 결국 그 돈을 다 먹어치워 여기 시후 호수처럼 평평하게 만들어버리겠죠. 어쩌면 땅에 구멍까지 파일 거예요. 앉아서 먹기만 하면요.
신은 우리에게 공평하게 같은 뇌와 신체 기관을 주셨어요.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스스로 부유하고 안락하게 살 기회와 의무가 있어요. 적어도 충분히 가지고 안락하게 살아야 해요. 하지만 남의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돼요. 그 재산은 그들이 힘들게 번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의 부모님이 힘들게 일해서 물려준 것일 수도 있죠. 아니면 신께서 주셨거나, 그들이 많은 전생에서 쌓은 공덕으로 스스로 얻은 것일 수도 수도 있어요. 그러니, 부자가 되고 싶다면, 타인의 부를 빼앗아 우리 것으로 만들 게 아니라 더 열심히 일하고, 지능을 활용하고, 더 지혜로워지고 총명해지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배우고, 더 많은 선행과 자선을 해서 그 공덕이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해야 해요. 이 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 혹은 자녀에게 주어지겠죠.
하지만 인간 본성이란 쉽게 통제되지 않아요. 그들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전에 『가지고 있었음』을, 『가진 자』였음을 알아요. 그래서 이제는 그들의 모든 걸 빼앗아 다시 『가진 자』가 되려 하겠죠. 그래도 그들의 지능은 빼앗지 못하죠. 일단 인간이 사업을 운영하고 투자로 돈을 벌 지능과 재능을 갖게 되면, 그들은 비밀리에 불법적인 수단이나 다른 어떤 나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진 자』의 지위를 되찾으려고 할 거예요.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에요. 현실에 안주하거나 나쁜 상황에 만족해서는 안 돼요.
우리가 세상을 바로잡도록 신은 이 세상을 험난하고 끔찍하게 만드셨죠. 마치 가게에 가서 물감과 붓을 사는 것과 같아요. 도료, 유화 물감과 붓 등 그림 도구들은 보기에 좋은 물건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고 즐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죠. 그림이 완성되는 동안 그 과정도 즐기고요. 그림이 완성되어 아름다운 작품이 됐을 때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하죠. 창의력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나타나니까요.
이처럼, 세상의 불행을 두고 신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검은 돼지주민의 색이 화려하지 않다고 신을 원망하지 말고, 여러분이 그저 색을 칠해주세요. 예를 들면 그래요. 그러니 신께서 주신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바꾸세요. 최선을 다해 바꾸세요.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노력은 한 거죠. 그 결실은 죽은 뒤에 천국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우리는 세상의 창조력에 대해 끝없이 얘기할 수 있어요. 이제 알겠죠.
창조에 대한 얘기예요. 30번째, 『창조성의 섬세한 기운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정교한 형태로 피어나는 것을 느껴보라』 그게 뭐죠? 됐어요, 잊어버립시다. 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죠. 31번… 자, 30번을 화두로 만들죠. 풀 수 있는 사람에게 비건 과자를 줄게요.
31번째, 『이마 한가운데에 무형의 숨결을 불어넣으라』 세상에, 『잠드는 순간, 이것이 심장에 닿으면 꿈과 죽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리라』 시바는 유머 감각이 있는 스승인 것 같아요. 수천 년이 흘렀는데도 최소한 우리에게 농담을 건네는군요. 적어도 그는 예수님보다는 재미있어요. 앗! 죄송해요. 다른 사람을 말한 건데 이름이 잘못 나왔네요. 그가 여전히 곁에 계신 걸 (크리스마스 시즌) 깜박했어요. 아직 27일이죠. 새해가 안 됐으니까… 죄송합니다. 며칠 전에 크리스마스였죠. 어쨌든 한바탕 웃으세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지 말고요. 좋아요, 그럼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넘어가죠… 32번으로 넘어가죠. 여러분은 내 생각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 같네요. 나도 이해했다고 해두죠. 그럼 이제 더 얘기 안 해도 되겠군요. 다 끝났으니까요.
자, 32번째예요. 『주관적으로 말하자면』 오, 날이 갈수록 더 복잡해지네요. 그를 완전히 떠나야겠어요. 히말라야의 소박한 집에 살면서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하다니요! 『주관적으로 글자가 단어가 되고 단어가 문장이 되듯이, 객관적으로 원이 세계가 되고 세계가 원리가 되듯이, 마침내 이게 모여 우리 존재를 형성하는 것을 발견하라』 오, 난 내 존재 전체에 단어와 문장이 가득한 건 싫을 것 같아요. 좋아요, 상관없어요. 이해된다면 해보세요. 난 원치 않아요. 이런 건 원치 않아요. 오, 맙소사. 그는 신비롭게 보이려 하네요. 그래야 우리가 그를 위대하게 여기겠죠.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말을 하면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와, 저 사람 정말 대단해』 최소한 우리가 즐겁게 웃을 수 있잖아요? (네)
33번째, 『은혜로우신 분이시여, 마음껏 뛰어노소서, 우주는 마음이 무한히 뛰어노는 텅 빈 껍데기이기에』 오, 그건 이해가 되네요. 좋아요. 우주가 텅 빈 껍데기라면 나쁘지 않네요. 우리가 마음껏 뛰어놀기에 충분히 넓으니까요. 이해했나요? 이해 안 되나요? 쉬워요. 자, 우주가 텅 빈 껍데기 라고 생각해 보세요. 쉽지 않나요? (그들은 어떻게 뛰어노는지 모르죠) 여러분이 달리면… (그들은 어떻게 뛰어노는지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당신이 보여주면 되죠. (지금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이건 장난입니다) 그냥 뛰어다니며 웃고 농담하고, 예수님과 축구도 하고, 부처님한테 야구를 해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그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세요. 분명히 이런 건 할 줄 모르실 거예요. 그건 미국인들이 새로 발명한 거죠. 우주를 집처럼 생각하고 마음껏 뛰어노세요. 텅 빈 집, 텅 빈 껍데기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는 거죠. 하고 싶은 걸 하면서요. 그냥 돌아다니면서 안에 뭐가 있는지 보세요. 어차피 다 텅 비어 있죠. 아주 쉬워요.
34번째, 『그릇의 옆면을 보지 말고 그릇을 바라보라』 예를 들어, 이것이 밥을 먹는 그릇이라면 그릇의 옆면을 보지 마세요. 쉽죠? 네. 『잠시 후, 인식하게 되리라』 무엇을 『인식하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릇을 인식하는 거겠죠. 밥이 담긴 그릇을요. 그릇이 가장자리가 없으니 밥이 쏟아지지 않게 해야죠. 그러니 밥이 쏟아지지 않게 살펴봐야 해요. 안 그러면 먹을 게 없죠. 그건 이곳 시후에서 아주 중요한 수행이죠. 특히 선행사 때나 일요일엔 수천 명이 각자의 밥그릇을 살펴보면서 밥그릇 비우는 수행을 하죠. 왜냐하면 주방팀이 때론 요리를 못하거든요. 얼마나 만들어야 충분한지 모르죠. 그때그때 달라요. 요리팀은 매주 바뀌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후하게 많이 요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러죠. 『그만해, 됐어!』
이곳의 어떤 여자 출가승은, 매주 주말마다 늘 똑 같은 『만트라』를 외워요. 『그만해, 됐어』 난 그녀의 『병』을 고치려고 다른 『만트라』를 가르쳐줬죠. 허나 그녀는 업의 습관적인 생각 때문에 늘 똑같은 『만트라』를 외워요. 『그만해, 됐어』 난 그녀에게 안거를 하며 스스로 그 『법문』 을 수행하라고 권했어요. 안 그러면, 매주 주말마다 음식이 부족할 테니까요. 난 사람들이 내 집에 와서 밥을 먹을 때 배가 반만 차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알겠어요? (네) 그녀는 바꾸지 못해요. 너무 나이가 들어서요. 어떤 사람들은 습관이 너무 오래돼서 바꾸지 못하죠. 그들이 나쁘거나 여러분을 싫어하거나 바꿀 의지가 없어서가 아녜요. 너무 나이 들어서 그런 거죠. 그래서 많은 가톨릭 수도회나 기독교 수도회에서 30세가 넘는 사람들을 받지 않는 거죠. 습관이나 생활 방식이 굳어진 사람들을 바꾸는 건 어렵기 때문이죠. 이해해요? (네)
사진: 『대자연 속 야생의 아름다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